괴짜에게 보내는 갈채
이 광 형
카이스트 17대 총장. 괴짜총장, 거위아빠, 미소아빠, 카이스트의 히딩크 등의 별명이 따라다닌다. 카이스트 전산학과 교수 시절, 한국 1세대 벤처 창업가들을 배출해 ‘벤처 대부’로도 불린다. 카이스트에 615억 원의 기부금을 유치했으며, 카이스트 최초의 융합학과인 바이오및뇌공학과를 신설했고, 국내 첫 미래학 연구기관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설립을 주도했다. SBS 드라마 〈카이스트〉에 등장하는 괴짜교수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며, 《우리는 모두 각자의 별에서 빛난다》 등을 썼다.
아웃사이더 #괴짜
50년 넘게 아웃사이더로 살았다. 무리에서 늘 외톨이였다.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눠도 외딴 섬에 격리된 듯한 깊은 외로움. 저들의 환담이 무르익을수록 그의 소외감은 더 짙어갔다. 스스로 잘하는 게 하나도 없다고 느꼈다. 특별한 재능도, 남다른 개성도, 말주변도 없으면서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한다고 여겼다. 카이스트 교수가 돼서도 꽤 오랜 기간 그랬다. 괴짜총장 이광형.
“늘 아웃사이더의 삶이었습니다. 메인스트림의 삶을 살게 된 건 10년도 되지 않아요. 반전이죠, 반전.”
그가 주목받은 건 역설적이게도 아웃사이더의 삶 덕분이다. 15년 전부터 텔레비전을 거꾸로 돌려놓고 보고, 종종 서류도 거꾸로 보는가 하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미존(未存)’ 수업을 개설해 이끌었다. 전산학과 교수 시절, “아무도 풀 수 없는 문제를 내라”는 문제를 내고, “내 컴퓨터를 해킹하라”는 특명(?)으로 캠퍼스를 뒤집어놓은 인물이기도 하다. 삭막한 캠퍼스에는 시장에서 사온 거위들을 몰래 풀어놓고 시치미 떼는가 하면, 이상해 보이는 연구에 빠져 제적 위기에 놓인 학생들을 어떻게든 구제했다. 틀과 고정관념, 편견과 꽉 짜인 패턴은 그가 질색하는 것들이었다.
2021년 2월 23일, 총장 취임 때도 그는 엉뚱한 주문을 했다. “공부를 덜 하라, 그리고 실패하라.” 그해 바로 ‘카이스트 실패연구소’가 들어섰다. 실패에서 배운 점이 있으면 성공으로 재해석해주는 연구를 하는 곳이다. 그런가 하면 ‘카이스트 크레이지 데이’도 있다. 독특하고 기이한 아이디어를 낼수록 빛나는 날.
그는 말한다. 괴짜가 세상을 이끈다고. 이미 만들어진 세상에 만족하지 않고 주도적으로 변화를 시도하는 이들이 세상을 바꾼다고. 그러면서 당부한다. 누구나에게 잠재돼 있는 자기만의 괴짜성을 잃어버리지 말길.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지 말고, 자기 안의 반짝이는 별빛을 감각하길. 그리고 그 별이 자기답게 반짝일 수 있게 내면의 목소리를 따라가길…
카이스트 뉴욕 캠퍼스 추진차 미국 출장을 다녀온 그와 서울 강남구 카이스트 도곡캠퍼스에서 마주 앉았다. 이 눈빛을 안다. 나이와 무관하게 호기심에 빛나는 아이 같은 눈빛. 궁금한 것이 있으면 미치도록 알고 싶어서 별처럼 반짝이는 눈빛. 그는 인터뷰 도중 자주 웃었고, 자주 눈물을 비쳤다. 감정 표현에도, 상황 설명에도 이례적일 만큼 투명하고 진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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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는 남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흔히 괴짜를 튀는 사람,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들 하는데,
내가 생각하는 진짜 괴짜는 남들이 뭐라고 하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아서
용기 있게 실행에 옮기는 사람이에요. (중략)
괴짜들이야말로 기존 세상에 안주하지 않고
늘 뭔가를 바꾸려 하는 사람들이에요.
이 사람들이 마음껏 괴짜다움을 발휘하는 세상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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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가 점점 조명받는 세상이에요. 괴짜, 아웃사이더를 어떤 존재로 여기는지요.
“남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 이제는 괴짜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좋게 내립니다. 흔히 괴짜를 남과 달라서 튀는 사람,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들 하는데, 내가 생각하는 진짜 괴짜는 남들이 뭐라고 하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아서 용기 있게 실행에 옮기는 사람이에요.”
일명 ‘괴짜부심’이 있나 봅니다.
“웬걸요. 사실 자신감이 없었을 땐 괴짜라는 말을 듣는 걸 싫어했어요. 자신감이 생긴 지는 오래되지 않아요. 한 10년 전쯤부터일 거예요. 교수 생활의 3분의 2는 자신감 없이 살았어요. 많이 힘들었습니다. 괴짜들이 살아남기 쉽지 않아요. 수많은 고정관념과 불편한 시선이 있죠. 공동체에서 외톨이가 되기 쉬워요. 하지만 괴짜들이야말로 기존 세상에 안주하지 않고 늘 뭔가를 바꾸려 하는 사람들이에요. 이 사람들이 마음껏 괴짜다움을 발휘하는 세상이 되면 좋겠습니다.”
없던 자신감이 뒤늦게 생기기도 하는군요. 그것도 50대 중반이 돼서.
“내가 꾸준히 시도해온 것들이 인정을 받으면서 달라졌습니다. 한 예로 2001년에 처음 바이오및뇌공학과를 만들 때는 반대도 심하고 삐걱거리는 부분도 많았어요. 저 역시 안 될까 봐 불안했고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 ‘아 그때 만들길 잘했구나’라는 확신이 생기면서 생각이 달라졌어요. 남들이 뭐라고 하든 나를 믿게 됐습니다.”
세상에 없던 새로운 걸 시도하는 과정에서는 늘 안티 세력이 있게 마련인데요.
“외로웠습니다. 그리고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이광형 총장의 눈가가 벌게졌다. 고이는 눈물에 스스로도 당황했는지 입가를 한껏 벌려 머쓱한 듯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이고, 많이 힘드셨나 봅니다. 당시 마음 수련을 어떻게 했는지요.
“인간의 마음을 다룬 인문학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읽다 보니 인간이란 게 원래 그런 존재더군요. 변화를 싫어하고, 남이 뭔가를 하면 질투하고 시기하는 존재. 그게 인간의 본능이라는 걸 이해하니까 내 마음이 위로가 됐어요. 저 사람이 이걸 반대하는 건 특별히 나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본능일 뿐이야, 라고 생각하니까 견디기 쉬워졌어요.”
그럼에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힘은.
“미래에 대한 믿음이요. ‘이 일은 언젠가 될 거야. 될 수밖에 없어. 그러니까 가는 거야’라는 믿음. 배척당하고 고난도 많이 겪었지만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서 가능했습니다.”
성공 경험이 중요하군요.
“성공이라는 말은 거창해요. 그건 이길 수밖에 없는 게임이었어요. 저는 뭔가를 시도할 때 시간을 봅니다. 현재는 이렇지만 미래에는 이렇게 될 것이다, 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현재 시점에서 생각하고 안 된다고 해요. 미래를 보고 나를 믿고 노력하면 다 되게 돼 있어요.”
10년 후 미래 달력을 가까이에 두고 수시로 넘겨보는 것도 그런 이유겠어요.
“모든 변수에 시간을 대입해 생각합니다. 저는 머리 회전이 그다지 빠르지도 않고 힘이 세지도 않아요. 장점이 있다면, 끈기와 집요함이에요. 그냥 오랫동안 버팁니다. 그걸 버티게 해주는 힘은 동적 세계관이에요. 세상은 항상 변합니다. 자연법칙은 변하지 않지만, 인간관계와 기술 등은 한순간도 머물러 있지 않아요. 사람도 상황도 바뀌죠. 지금은 반대하는 사람이 나중에는 생각이 달라질 수 있고, 결정권자가 다른 사람으로 바뀔 수도 있지요. 10년 후 달력을 보면서 ‘2032년은 어떤 세상일까’를 상상합니다. 자극을 받아요. 지금 안 되는 것을 기다리게 하는 힘을 주기도 하고요.”
괴짜가 세상을 이끈다며 괴짜다움을 지킬 것을 장려했지만, 현실에서 괴짜로 살아가는 건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니에요. 그래서 성장과정에서 튀지 않는 사람으로 적당히 타협하기 쉽고요. 총장님은 긴 시간 괴짜다움을 잃지 않았어요. 그 용기는 어디에서 온 건가요.
“남들과 똑같이 하는 건 재미없었어요. 텔레비전을 거꾸로 놓고 본 것도 그래요. 뇌를 공부하다 보니 뇌가 점점 굳어지고 있다는 위기감에서 새로운 시도를 했죠. 재밌어 보이기도 했고. 다들 이상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나마 좋게 봐준 표현이 괴짜 정도였고요. 그런데 사실 그때 텔레비전 사건은 저의 본색을 드러낸 것뿐이에요.”
본색이라니요?
“늘 튀는 생각으로 왕따를 당하다 보니 이상한 발상이 떠올라도 겉으로 표현을 안 했거든요. 속으로는 괴짜스러움을 지키면서도 아닌 척한 거죠. 이중인격이라고 해야 하나요(웃음)? 15년 전쯤엔 그래도 자신감이 붙기 시작하면서 머릿속 생각을 감추지 않고 꺼내 보이기 시작했어요.”
아웃사이더로 오래 살아오면서 인사이더가 되고 싶진 않았어요?
“처음엔 되고 싶었죠. 많이 외롭고 힘들었으니까.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습니다. 되고 싶다고 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결국 내가 실력을 쌓아야 하는 것이고, 내가 하는 일이 잘돼서 결과로 증명해야 한다고.”
결과적으로 아웃사이더의 마인드를 버리지 않고 주류가 된 덕에 총장님만의 독보적 색채가 빛날 수 있었는데요.
“인사이더는 어떤 면에서 엇비슷합니다. 주류의 삶의 모습은 큰 차이가 없잖아요. 그런데 아웃사이더는 각자 달라요. 틀 밖에서 자신만의 개성을 유지해요. 며칠 전 미국 출장 중에 일본과 비교해서 한국의 장점이 뭐냐는 질문을 받았어요. 일본은 천편일률적이고 틀이 강하지만, 한국은 융통성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가끔은 틀 밖으로 나가서 사고를 할 줄 아는 거죠. 창조성과 연관되는 개념이에요.”
뉴욕 출장 이야기가 나온 김에 여쭤볼게요. 카이스트 뉴욕캠퍼스 추진은 어디까지 왔나요.
“뉴욕대와 엠오유(MOU)를 맺고 왔어요. 두 가지 형태의 합의를 이뤘습니다. 하나는 연구센터를 뉴욕대와 카이스트 양쪽에 만들어서 대학원생들이 공동 연구를 하는 거고, 또 하나는 동일한 학위를 공동으로 운영하는 겁니다. 가보니 한국의 위상이 달라진 걸 느끼겠더군요. 예전에는 뉴욕대와 공동 협력을 제안하면 우리 위상이 상대적으로 낮았는데, 이제는 아니에요. 대등합니다. 뉴욕대도 카이스트가 필요하고, 카이스트도 뉴욕대가 필요해요.”
뉴욕과 실리콘밸리의 카이스트 캠퍼스는 총장님이 25년 전부터 꿈꿔온 사업으로 알아요.
“꾸준히 추진하면 되는구나 싶어요. 실리콘밸리 쪽은 아직 구체적인 안은 없지만 늘 잊지 않고 있습니다. 마음속에 꿈을 품고 있는 게 중요해요. 그래야 기회가 될 때 연결할 수 있거든요.”
총장으로 취임한 지 1년 4개월이 지났는데요, 돌아보면 어떤 시간이었나요.
“제가 일을 너무 많이 벌이고 있구나, 싶어요. 하다 보니 이렇게 됐습니다. 굵직한 것만 거론해도 뉴욕캠퍼스, 과학기술의학전문대학원 설립, 평택반도체캠퍼스 등이 있어요. 하나하나가 엄청나게 큰 사업들입니다. 이것만 잘 마무리하면 좋겠어요. 더 이상 벌이지 말자고 결심합니다(웃음).”
총장이 된 후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는 무엇인지요.학생과 교수들에게 두루두루.
“꿈. 꿈이요.”
꿈이라.
“나의 존재의 이유를 꿈과 연결해보면 좋겠어요. 학생들을 보면 공부 잘하고 성적이 좋죠. 그런데 정작 자기가 왜 이 세상에 태어났고, 세상을 위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틈이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 꿈이 작아요. 엄마가 공부하라고 해서 했는데, 정작 대학에 와서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니 친구와 비교하면서 쪼잔해지죠. 더 큰 세상을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내가 얼마나 큰 사람인지, 인류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이런 꿈을 가지는 건 매우 중요해요. 꿈을 가지면 이뤄질 가능성이 높거든요.”
20대에 총장님도 “나는 왜 남보다 잘하는 게 하나도 없을까?”라는 고민을 했다는 말이 위로가 됐습니다. 한국 최고의 인재가 모이는 카이스트 총장님도 스스로를 초라하게 느낀 시절이 있었구나, 라는 묘한 연대감.
“그때 스스로 느낀 불행감은 비교에서 연유했어요. 남과 비교할 경우 가장 잘된 모습은 뭘까요? 남과 비슷해지는 거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나를 믿는 힘이 중요합니다. 내 마음속에 방향을 비추고 ‘나는 이런 사람이야, 나에겐 이 길이 좋은 거야’라는 확신을 가지면 좋겠어요. 소외감이라는 것도 그래요. 남과 비슷하게 어울리려는 마음에서 비롯하는 거잖아요. 그 시절을 거치고 보니 결국은 내가 색깔을 분명히 하고, 잘할 수 있는 길을 선택해서 실력을 쌓는 게 최후의 승자더군요. 남과 비슷하게 가려는 사람들은 존재감이 없어요. 남과 비슷해지려는 인싸(인사이더)들은 크게 빛나기 힘들어요. 엇비슷한데 빛나봐야 얼마나 빛나겠어요. 흐릿흐릿하죠. 아싸(아웃사이더)들은 환하게 빛날 수 있어요. 아무도 가지 않은 자신만의 길 위에서 나만의 별로. 그렇게 독보적으로.”
〈이광형 카이스트 총장 2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