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형 KAIST 총장·리셋 코리아
4차산업혁명 분과장
최근 서울 상공을 북한 무인기가 누비고 지나간 사건이 발생했다. 서울 상공 방어에 허점을 노출했고, 대응 기술의 부족을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정보기술(IT) 선진국 하늘에서 벌어진 황망한 일에 국민의 머릿속에 겹치는 모습이 있었다.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활약하는 튀르키예와 이란제 드론들이다. 우크라이나는 튀르키예가 제작한 무인기를 이용하여 전투하고 있다고 한다. 러시아는 이란제 자폭 드론을 활용하여 우크라이나를 공격하고 있다.
이런 나라들이 신무기를 수출하는데, IT 선진국 대한민국은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또 지난해 21조4000억원어치를 수출하여 국민 자존감을 크게 고조시킨 한국 방위산업은 무엇이란 말인가. 하지만 수출하는 무기의 내용을 보면 생각이 조금 달라진다. 20세기 2차 대전에서 사용하던 무기에 한정되어 있다. 탱크·장갑차·대포 등이다. 드론 등 현대전의 양상을 바꾸는 첨단 무기는 없다.
북한은 무기개발 인력 우대, 여명 과학자거리 호화주택 제공
처우 낮은 데다 실험 실패하면 배상 요구하는 한국과 대조적
‘늙은 공룡’ 한국, 신무기 기획부터 생산까지 10년 넘게 걸려
군·관·민 역량 한데 모아 게임 체인저급 첨단무기 만들어야
지난달 13일 경기 파주 무건리 훈련장에서 열린 아미타이거 시범여단 연합훈련에서 정찰드론이 적 탐지 등 임무 수행을 하고 있다. [뉴시스]
IT 강국인 우리나라는 세계 시장에서 휴대전화를 연간 1억대 이상 팔고 있으며, 한국산 메모리 반도체가 없으면 세계 산업이 정지될 정도로 막강한 시장 점유율을 장악하고 있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한국의 가전제품이 가정과 호텔을 장식하고 있다. 이런 나라에서 아직도 재래식 무기 수출에 만족하고 있다니, 신무기 획득체계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 방위산업 개발의 난맥상은 지난 10년간의 업보가 아닌가 생각한다. 2014년부터 우리 사회에는 ‘방산 비리’라는 단어가 회자하기 시작했다. 방위산업 비리에 연루된 사건이 계속해서 터졌고, 그때마다 각종 법·제도가 그 비리를 막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만들어졌다. 무기를 개발하고 생산하고 실전에 배치할 때까지 모든 단계에서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태도로 안전하고 또 안전한 제도를 만들었다. 그래서 비리는 현저하게 줄었다. 성공이다. 그런데 혁신도 함께 줄었다. 지나치게 조심 운전을 하다 보니, 정작 목표로 하는 일은 거의 이루지 못하는 난센스가 벌어진 것이다. 결국 튀르키예와 이란도 만드는 무인기를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나라가 된 것이다.
신무기 개발 사업은 목표보다 과정이 더 중요한 일이 되었다. 모든 과정은 객관적으로 투명해야 한다. 심지어 창의나 도전도 위험인 일이 되고 말았다. 지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창의와 도전은 객관적으로 증명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감사를 받으면 객관성을 증명하기 어렵다. 그러니 하던 대로 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우리나라 신무기 획득 체계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늙은 공룡이 되어버렸다.
우크라이나가 사용하고 있는 무인기 ‘바이락타르 TB2’.
현재 실무 부서에서 신무기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소요를 제기한다. 소요 제기란 필요성을 제기하고 신제품의 기획을 하는 단계이다. 그다음에는 이것을 수입할 것인지, 자체 개발할 것인지 검토한다. 신무기일 경우에 기술을 주는 곳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 자체 개발로 결론이 난다. 그때부터 연구개발비 예산 신청이 시작되고, 예산 확보를 위한 노력이 시작된다. 예산 확보는 1, 2년 이내에 되는 경우도 있지만 3, 4년 소요되는 경우도 많다. 다행히 예산이 배정되면 그때부터 연구개발이 시작된다. 이때는 이미 실무 부서에서 소요 제기를 한 후 3~4년이 흐른 다음이다. 그리고 개발하는 데 3~4년은 족히 지나간다. 개발 기간 도중 신기술이 나와서 연구 내용을 수정할 필요가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원래 계획을 변경하려면 매우 까다로운 절차와 심사를 거쳐야 한다. 객관적으로 증명하기 어려운 창의성 발휘는 위험한 일이 될 수 있다. 창의란 원래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시제품을 개발하여 실험해야 할 필요성이 있을 때는 협력업체와 공동 개발한다. 공동 연구할 협력업체 선정도 주관성이 개입되면 위험하다. 다행히 연구개발이 성공했다고 해보자. 그러면 이제 대량생산을 하여 실전에 투입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이 과정이 몇 달 또는 수년이 걸린다.
실전 배치하기로 결정되었다 해보자. 그러면 실제로 대량 생산할 업체를 선정해야 한다. 개발 과정에서 시제품 생산에 참여했던 기업에 특혜를 주면 안 되기 때문에 당연히 공개 입찰을 한다. 생산업체가 선정되고, 생산이 시작되어 실전에 배치되면 결국 처음 소요 제기로부터 10년 이상이 지나게 된다. 다시 말해서 10년 전에 기획한 제품이 현장에 도착하는 것이다.
러시아가 발사한 이란제 자폭 드론 ‘하샤드-136’.
복장이 터진다. 혹자는 설마 그럴까 생각할 것이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복장 터지는 스토리는 더 있다. 더욱 기가 막히는 일은 연구개발에 실패하면 절대 안 된다는 사실이다. 실패의 책임은 너무나 가혹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7년 무인기 실험 사건이다. 국방과학연구소에서 무인기를 실험하다가 추락한 적이 있다. 방위사업청은 연구원 개인의 책임이라 판정하여 개인이 변상하라고 판정했다. 실험용 무인기 값이 67억원이니 관련된 5명이 13억4000만원씩 물어내라고 판정했다. 많은 논란 끝에 연구원 개인 배상은 면제되었지만, 연구원들에게 깊은 트라우마로 남았다.
위험한 일을 하면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 창의고 도전이고 무엇보다 안전이 중요하다. 새로운 일을 하지 않으면 가장 안전하다. 위험한 일은 피하는 것이 능사가 되어버렸다. 이제는 위험한 일을 하는 부서 배치를 기피하는 경향마저 생겨 버렸다.
국방기술 개발을 담당하는 사람들의 애로사항은 하나 더 있다. 자신이 개발하는 연구 내용을 외부에 말하면 안 된다. 당연히 국가 비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인간은 자기 일을 이야기 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일이 잘될 때는 자랑하고 싶고, 잘 안될 때는 고민을 털어놓고 싶다.
그런데 국방기술 연구자에게는 그런 욕구를 해소할 길이 없다. 거룩한 애국심에 묻어 두어야 한다. 국방 연구 현장의 이러한 애로사항은 자연스럽게 후배들에게 전달된다. 한창 발랄한 MZ 세대에게 이런 국방기술 개발이 선호될 리가 없다.
이제야 북한 무인기가 서울 상공을 휘젓고 지나가도 속수무책인 이유가 이해가 간다. 튀르키예나 이란도 수출하는 무인기를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현실이 이해가 간다.
러시아가 발사한 이란제 자폭 드론 ‘하샤드-136’.
주국방과 방위산업 활성화를 위하여 아래 네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현재의 신무기 획득 체계를 파격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나라 무기 획득 체계는 늙은 공룡과 같이 되어버렸다. 약간의 위험성을 감수하고라도 빠르게 변하는 신기술을 신속하게 적용할 수 있게 고쳐야 한다.
둘째, 육·해·공·해병대 각 군이 자체적으로 무기 체계를 개선할 수 있는 연구개발 기능을 가져야 한다. 신무기를 현장에 사용하다 보면 소소하게 수정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 특히 10년 전에 기획했던 것들이라 더욱 그렇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이것이 어렵다. 기존 제품의 성능 개선을 위한 소요 제기를 다시 해야 한다. 각 군이 자체 연구개발 기능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 국방기술 우수 인재 확보를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현재의 공무원이나 국방연구소 처우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현재 잘 나가는 게임 회사나 대기업과 비교할 수도 없다. 현재 지급하는 연봉의 최소 2배를 지급해야 한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상대해야 할 북한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북한에서는 전체 인구 중에 가장 뛰어난 인재를 모아서 무기 개발에 투입하고 있다. 평양에 있다는 여명 과학자 거리가 바로 미사일 만들고 핵무기 만드는 연구원들의 호화 주택이라 알려져 있다.
넷째, 인공지능·양자기술 등 첨단기술을 적용하는 신무기의 소요를 기획하기 위해서는 군, 민간 전문가, 기업 등이 함께 소요를 기획하는 통합 소요팀을 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존의 군 단독 소요 기획으로는 미래 게임 체인저급 신무기 기획에 한계가 있다.
군 당국에서도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개선 노력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너무나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간단히 어느 법이나 제도 개선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 생각한다. 가칭 ‘방위산업개발촉진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여 한꺼번에 해결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5년, 10년 후에도 국방기술 개발의 난맥상은 계속되고, 북한에 농락당하는 일이 반복될 것이다.
이광형 KAIST 총장, 리셋 코리아 4차산업혁명분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