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력이 경제, 정치, 군사, 안보의 핵심 전략이 되고 새로운 국제질서와 동맹을 만들어낸다. 이른바 기정학(技政學)의 시대다. 기정학 시대의 중요한 변화 중 하나가 '디지털경제'에서 '바이오경제'로의 패러다임 변화다. 그리고 이 변화의 승부처가 될 핵심 기술이 바로 합성생물학이다.
지난해 9월, 미국은 '바이오경제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바이오기술로 에너지, 화학, 소재 등 기존 제조산업을 혁신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지난해 10월 우리 정부는 '국가전략기술 육성방안'을 발표했는데, 합성생물학이 포함된 '첨단바이오'가 12대 전략기술 중 하나로 선정됐다.
합성생물학이 무엇이기에 미래 바이오기술의 총아로 여겨지는 걸까? 합성생물학은 흔히 '생명과학과 유전공학에 공학적인 개념을 도입한 학문'으로 정의한다. 최근에는 공학 개념과 산업적 응용이 강조된 조금 더 포괄적인 의미인 '공학생물학(Engineering Biology)'으로도 불리고 있다.
바이오 분야는 연구개발에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산업적 규모로 확장하기 까다롭고, 연구 재현과 예측도 어려워서 후발주자가 선도기술을 따라가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나 합성생물학은 이러한 '게임의 룰'을 바꾼다. 합성생물학은 생명체의 DNA를 생명을 프로그래밍하는 언어로 바라보고, 정보기술(IT)의 코딩 개념을 적용한다. 복잡하고 변덕스러운 생명이 아니라 논리적이고 예측가능한 알고리즘에 기반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나라가 강세를 보이는 분야 중 하나인 반도체 개발 및 생산 과정과 유사해서 기존의 강점을 접목하기도 용이하다.
산업 구조도 비슷하다. 반도체 산업은 설계 담당인 '팹리스'와 생산 담당인 '파운드리'로 나뉘는데, 두 분야는 서로 구분되면서도 상호의존적이다. 우수한 설계는 꼼꼼한 시험과 검증이 있어야 가능하고, 좋은 제품이 나오려면 창의적인 설계가 필요하다. 바이오 분야에서도 '코딩'을 통해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하려면 이를 실현할 '바이오파운드리'가 필요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합성생물학의 바이오파운드리와 반도체의 파운드리는 차이점도 있다. 반도체 파운드리의 목적은 최종 제품인 반도체를 양산하는 것이지만, 바이오파운드리는 최종 바이오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세포공장'을 개발하여 기업에 제공한다. 즉, 바이오파운드리는 '공장을 만드는 공장'인 셈이다.
바이오파운드리는 복잡하고 섬세하다. 고가의 자동화 설비가 인공지능(AI)과 같은 정보기술이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시스템이기에 구축과 운용에는 고도의 전문성을 요한다. 예컨대 대표적인 바이오파운드리 기업인 미국의 '깅코바이오웍스' 연구자 중 3분의 1 이상이 IT 전문가다. 다루는 제품은 바이오지만 방법론적 기반은 IT인 셈이다.
바이오파운드리는 단순히 자동화 장비를 모아둔 시설이 아니다. 합성생물학에 필요한 모든 활동을 집대성하고 자유롭게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이다. 한편으로는 파급효과가 큰 만큼 국가 간의 경쟁이 치열하고, 승자와 패자 사이의 기술종속 우려도 크다. 우리나라도 바이오파운드리 구축을 더 이상 미루면 안 된다. 우리는 지금 반도체 파운드리 산업을 대만에 선점 당해 땅을 치며 후회하고 있다. 바이오 분야에서는 또다시 이런 일을 반복하지 말아야 하겠다. 지금이 바로 시작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