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약물도 쉽게 재설계하는 분자 편집 기술 개발
약품 등에 가장 흔히 쓰이는 피리딘 화합물을 아주 손쉽게 바꿔 쓸 수 있는 합성법이 개발됐다. 복잡한 구조에도 쉽게 적용할 수 있어 다양한 신약 후보 물질 탐색의 효율성과 성공 가능성을 크게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 대학 화학과 홍승우 교수(기초과학연구원 IBS 분자활성 촉매반응 연구단 홍승우 단장직무대행) 연구팀이 피리딘 구조 내 질소의 위치 변경(원하는 위치에 새 질소를 넣고 기존 질소는 제거) 방식으로, 주변 치환기*의 상대적 위치를 조절하는 ‘질소 원자 전위(N-atom transposition)’ 합성법을 개발했다.
* 치환기(Substituent) : 분자의 기본 골격에 붙어 분자의 화학적·물리적 성질 등에 영향을 주는 원자 또는 원자단
이번 연구는 과기정통부의 IBS 기초과학연구단 지원 사업을 통해 수행됐으며, 세계적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8월 18일(화) 게재됐다.
피리딘(Pyridine)은 탄소(C) 원자 5개와 질소(N) 원자 1개로 구성된 육각형 고리 구조를 띠며 의약품 등 다양한 화학물질의 기본 골격으로 널리 활용된다. 아울러 피리딘은 같은 구성의 치환기가 붙어 있더라도 질소와 치환기의 상대적인 위치에 따라 분자의 물리화학적 성질(용해, 흡수, 투과, 결합 등)과 생물학적 활성(약효)이 크게 달라지는 특성을 가진다. 이에 따라 신약 개발에서는 질소의 위치 관계만 조금씩 다른 이성질체*를 만들어 기능을 비교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 위치 이성질체(Positional isomer) : 구성 원자와 치환기는 같지만 특정 원자나 치환기의 위치가 서로 다른 화합물
그러나 기존에는 피리딘 고리에 붙은 치환기가 위치를 바꾸기 어려운 고정된 요소로 여겨졌다. 이 때문에 원하는 배치의 이성질체를 얻으려면 각각에 맞는 출발 물질과 합성 경로를 설계해 처음부터 따로 만들어야 했다. 완성된 분자에서 치환기만 다른 자리로 옮기는 방법도 시도됐지만, 치환기의 종류에 따라 반응 조건이 달라져 여러 치환기가 결합된 복잡한 분자에 적용하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연구진은 치환기를 하나씩 옮기는 대신 기준점인 질소의 자리를 바꾸는 역발상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치환기는 그대로 둔 채 질소의 위치를 바꿔, 질소를 기준으로 여러 치환기의 위치 관계를 한꺼번에 변화시킨 것이다.
이를 위해 연구진은 외부의 질소 공급원으로부터 새로운 질소를 고리에 삽입한 뒤, 기존 질소를 제거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이 과정에서 기존 6원자 고리가 일시적으로 7원자 고리로 확장됐다가 다시 재배열되며 질소의 위치가 달라진 새로운 피리딘이 형성됐다. 동위원소 추적 실험 결과, 새로 투입된 질소는 고리에 남고, 기존 질소는 질소 기체(N2)로 배출됨이 입증됐다. 새 합성법은 다양한 구조의 피리딘에 폭넓게 적용됐다. 연구진은 치환기가 하나인 단순 구조부터 두 개 이상의 복잡한 구조, 화학적 성질이 각기 다른 여러 치환기를 가진 구조까지 질소의 위치를 자유롭게 변경하는 데 성공했다.
반응 조건을 최적화했을 때 이성질체 합성 수율은 88%에 달했으며, 반응물의 양을 10밀리몰(mmol)로 크게 증량한 실험에서도 74%의 높은 수율을 유지해 대량 생산 및 실용화 가능성도 입증했다.
특히 실제 시판 중인 항암제(비스모데깁, 아비라테론 아세테이트)와 소염진통제(에토리콕시브)에 이 기술을 적용해 기존 약물의 복잡한 골격은 그대로 유지한 채 질소 위치만 다른 새로운 약물 후보 분자들을 합성해 냈다.
또한 연구진은 같은 출발 물질이라도 사용하는 용매에 따라 형성되는 위치 이성질체의 비율이 달라진다는 점을 발견했다. 계산화학 분석 결과, 이는 용매에 따라 화학반응에 필요한 최소 에너지인 ‘에너지 장벽’의 높이가 달라지기 때문으로 나타났다. 용매 조건을 조절하는 것만으로도 원하는 특정 위치 이성질체를 선택적으로 합성할 수 있음을 입증한 결과다.
홍승우 IBS 단장은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핵심 골격 안의 원자 위치 자체를 바꿔보자는 발상의 전환에서 출발한 연구”라며, “완성된 분자의 핵심 골격을 원자 수준에서 직접 편집해 물성과 약효 변화를 다각도로 탐색하고, 신약 후보 물질의 발굴 범위를 획기적으로 넓히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원문 출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빛을 이용해 간단하게 유용한 화합물 만든다
환경 오염을 유발하는 부산물이나, 높은 에너지가 필요한 고온 공정 없이 빛을 이용해 친환경적으로 의약품의 주요 원료를 만들 수 있는 새로운 합성 공정이 개발됐다.
우리 대학 화학과 홍승우 교수(IBS 분자활성 촉매반응 연구단 부연구단장) 연구팀은 광(光)촉매를 이용해 질소 고리화합물을 합성하는 새로운 화학반응을 제시하고, 의약품의 주요 골격인 ‘락탐’과 ‘피리딘’을 하나의 분자에 도입하는 데 성공했다.
‘질소 고리화합물’은 약용 화합물의 주요 구성요소다. 고리(원) 형태로 결합한 탄소 원자 사이에 질소 원자가 끼어 있는 구조로, 여기에 작용기를 결합해 약품을 합성한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승인한 약물의 60% 이상이 질소 고리화합물 구조를 포함하고 있다. 신약 후보 물질 발굴만큼이나 질소 고리화합물을 쉽게 합성할 수 있는 전략 개발이 중요한 이유다.
연구팀은 안정적인 유기 분자를 불안정한 삼중항 상태(triplet state)로 만들어 유용 물질을 합성하는 전략을 새롭게 제시했다. 우선 연구팀은 피리딘에 아미드 그룹을 부착한 피리디늄 염이 삼중항 에너지를 가질 수 있음을 계산화학적으로 예측했다. 삼중항은 분자에서 스핀이 한 방향으로 존재하는 상태로, 매우 불안정하여 자연에서는 잘 발견되지 않는다. 삼중항 상태를 상온에서 구현한다면,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화학반응에 적용할 수 있다.
이후 실제 실험을 통해 피리디늄 염을 삼중항 상태로 만들었다. 피리디늄 염이 빛 에너지를 받아 삼중항 상태가 될 수 있도록 광촉매를 활용했다.
제1저자인 이우석 연구원은 “계산화학적 예측과 실험적 확인을 통해 ‘삼중항 에너지 전달’이라는 새로운 화학반응을 보고했다”며 “환경 오염을 유발하는 시약을 첨가해야 던 기존 합성법과 달리 가시광선을 활용하기 때문에 친환경적이다”라고 설명했다.
더 나아가 연구진은 하나의 분자에 피리딘과 락탐을 동시에 선택적으로 생성할 수 있음을 처음으로 보여줬다. 기존에는 피리딘과 락탐을 동시에 도입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재료와 여러 단계의 화학반응을 거쳐야 했지만, 이제는 한 번의 반응으로 두 작용기가 선택적으로 결합된 화합물을 합성할 수 있다. 주요한 생리활성을 지닌 골격을 한 분자에 결합시킬 수 있어 더 경제적인 합성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약효도 증가시킬 수 있다. 또한, 연구진은 삼중항 에너지 전달 메커니즘을 피리딘뿐만 아니라 여러 고리 구조 합성 반응에 적용할 수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
연구를 이끈 홍승우 부연구단장은 “삼중항 에너지 전달을 이용하면 의약품 합성에 필요한 단계를 줄일 수 있다”며 “과정이 간단할 뿐만 아니라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향후 신약 및 각종 화학제품 개발 등 산업계 전반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