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과거 기억에 머무를까?”...KAIST, 기억 전환 스위치 규명
“치매나 인지저하 환자들은 왜 과거 기억에 머무를까?”
우리 대학 연구진이 우리 뇌 속에서 최신 기억을 선택적으로 불러오는 ‘신경 스위치’의 존재를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 이번 연구는 뇌가 과거 기억과 새로운 기억 사이에서 필요한 정보를 선택하는 원리를 밝혀낸 것으로, 향후 기억력 감퇴와 인지 유연성 저하 치료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우리 대학은 생명과학과 한진희 교수 연구팀이 내측중격(Medial Septum, MS·기억과 학습을 조절하는 뇌 영역)과 내측내후각피질(Medial Entorhinal Cortex, MEC·해마*와 연결돼 기억 정보를 처리하는 뇌 영역)을 잇는 특정 신경 회로가 과거 기억과 최신 기억 사이를 전환하며, 상황에 맞는 최신 정보를 선택하는 핵심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밝혀냈다고 17일 밝혔다.
*해마(hippocampus): 새로운 기억을 만들고 저장하는 핵심 뇌 부위
우리는 매일 새로운 경험을 통해 기억을 업데이트하며 살아간다. 예를 들어 어제보다 오늘 방문한 식당이 더 만족스러웠다면, 뇌는 기존 기억을 수정해 새로운 정보를 반영한다. 이처럼 과거와 현재의 기억 사이에서 필요한 정보를 선택하는 능력은 의사결정, 문제 해결, 미래 예측, 논리적 추론과 같은 고차원 인지 기능의 핵심이다. 그러나 뇌가 어떤 원리로 기억을 구분하고 전환하는지는 오랫동안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팀은 뇌 깊숙한 곳에 위치한 내측중격에 주목했다. 내측중격은 해마의 활동 리듬을 조절하며, 뇌가 정보를 효과적으로 저장하고 불러올 수 있도록 돕는 ‘조율자’ 역할을 하는 영역이다.
연구 결과, 내측중격의 특정 신경세포가 기억 정보를 처리해 해마로 전달하는 뇌 영역인 내측내후각피질로 신호를 보낼 때 뇌는 최신 기억을 더 잘 떠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연구팀이 빛을 이용해 이 신경 회로를 인위적으로 차단하자 실험동물은 최신 정보를 활용하지 못하고 과거 방식대로 행동했다. 기억 저장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해마의 신경 활동 역시 과거 상태로 되돌아갔다. 이는 해당 회로가 여러 기억 가운데 현재 상황에 필요한 최신 정보를 선택하는 ‘신경 스위치’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연구팀은 뇌의 활성 상태에 따른 기억 수행 능력도 함께 분석했다. 우리 뇌는 활발히 정보를 처리하는 ‘온라인 상태(세타파·학습과 집중 시 활성화되는 뇌파)’와 휴식 상태인 ‘오프라인 상태(델타파·수면이나 휴식 시 나타나는 느린 뇌파)’를 반복적으로 오간다.
분석 결과, 온라인 상태가 길게 유지될수록 최신 기억을 더 잘 떠올렸으며, 반대로 온라인·오프라인 상태 전환이 잦을수록 기억 인출 능력이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뇌의 특정 리듬과 상태가 효과적인 기억 인출을 결정하는 중요한 신경학적 지표임을 시사한다.
이번 연구는 뇌가 과거 기억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정보를 유연하게 반영하는 메커니즘을 규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연구팀은 이번 발견이 향후 치매·알츠하이머병과 같은 퇴행성 뇌질환 환자의 기억력 감퇴와 인지 유연성 저하를 개선하기 위한 새로운 치료 기술 개발로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진희 교수는 “이번 연구는 우리 뇌가 수많은 경험을 시간 순서대로 정리하고 활용하는 원리에 대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며 “기존에는 기억 인출을 단순히 저장된 흔적을 재생하는 과정으로 이해했지만, 이번 연구를 통해 뇌가 경쟁하는 기억들 사이에서 최신 정보를 능동적으로 선택하는 조절 시스템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KAIST 생명과학과 김무준 박사, 서보인 박사과정, 소선회 박사과정, 최정욱 박사과정, 황재민 박사과정, 박주희 박사과정 대학원생이 참여했으며, 신경과학분야 최상위 국제 학술지 ‘네이처 뉴로사이언스(Nature Neuroscience)’에 4월 29일자 게재했다.
※ 논문명: A septo-entorhinal GABAergic pathway that enables switching between episodic memories https://doi.org/10.1038/s41593-026-02280-6
※ 저자 정보: Mujun Kim(KAIST, 제1저자), Boin Suh(KAIST), Sunhoi So(KAIST), Jung Wook Choi(KAIST), Jaemin Hwang(KAIST), Juhee Park(KAIST) & Jin-Hee Han(KAIST, 교신저자)
이 연구는 중견연구과제(한국연구재단),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의 지원과 KAIST 장영실 펠로우십의 지원을 받아 수행되었다.
재생의료 패러다임 바꿀 3차원 줄기세포 배양 기술 제시
줄기세포를 많이 넣어도 몸속에서 오래 살아남지 못하는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기술이 나왔다. 줄기세포는 몸의 다양한 조직으로 자라거나 손상된 부위를 회복시키는 데 활용되는 세포로, 우리 대학 연구진이 세포 주변 환경을 정밀하게 설계한 3차원 배양 기술을 개발해 이 줄기세포의 생존력과 치료 효과를 동시에 크게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이번 성과는 줄기세포 치료의 한계를 넘어, 재생의료의 판도를 바꿀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 대학은 생명과학과 전상용 교수 연구팀이 줄기세포를 더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새로운 배양 기술을 개발했다고 29일 밝혔다. 연구팀은 세포가 실제 몸속처럼 자랄 수 있도록 돕는 ‘인공 바닥(배양 기판)’에 고분자 매트릭스(배양 기판 표면을 코팅하는 인공 구조체)를 적용하고, 그 위에서 인간 지방유래 줄기세포(hADSCs, 지방 조직에서 얻는 줄기세포)를 입체적으로 배양하는 3차원 플랫폼을 구현했다. 그 결과, 기존보다 세포의 기능과 치료 효과가 획기적으로 향상된 것을 확인했다.
인간 지방유래 줄기세포는 채취가 쉽고 잘 증식하며 면역 거부 반응이 적어 치료용 세포로 주목받아 왔다. 그러나 기존 2차원(2D, 평면) 배양 방식에서는 시간이 지나면서 세포가 늙고 기능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세포를 덩어리 형태로 키우는 3차원(3D, 입체) 배양 기술이 연구돼 왔지만, 세포가 몸속에서 오래 살아남거나 기능을 유지하는 데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었다.
연구팀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록산(실리콘과 산소로 이루어진 생체친화적 고분자 물질)이 촘촘히 가교화된(그물처럼 단단히 연결된 구조) 합성 고분자 물질을 개발하고, 이를 ‘폴리-지(poly-Z)’로 명명했다.
이 물질은 배양 기판 표면의 물리화학적 특성을 바꾸어서 세포 배양 배지(세포를 키우는 영양 용액)에 함유되어 있는 알부민 단백질의 흡착을 촉진하고, 그 결과로 세포들이 바닥에 부착되지 않고 자기조립을 통해 3차원의 스페로이드(세포 덩어리) 구조체를 형성하도록 한다.
폴리-지를 활용한 3차원 배양 환경에서 형성된 줄기세포 스페로이드는 세포외기질(세포 주변을 둘러싸며 지지하는 구조물)의 생성이 증가되어 실제 몸속과 유사한 환경이 조성되었고, 기존 방식보다 뛰어난 성능을 보였다.
실험 결과, 폴리-지 기반 3차원 배양 줄기세포는 다른 세포로 변할 수 있는 분화능력(필요한 조직으로 바뀌는 능력)과 면역 반응을 조절하는 능력이 향상됐으며, 체내에서 살아남는 시간도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급성 대장염과 급성 간손상 동물 모델에서도 기존 방식보다 더 우수한 치료 효과를 보였다. 이는 같은 양의 줄기세포를 투여하더라도 더 오래 살아남고 더 활발하게 작용해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연구팀은 이번 기술이 단순히 세포를 덩어리로 만드는 것을 넘어, 세포 주변의 미세환경(세포가 실제 몸속에서 접하는 환경과 유사한 조건)을 풍부하게 조성한다는 점을 확인했다. 즉, 세포를 단순히 모아놓는 것이 아니라, 몸속과 비슷한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준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인테그린(integrin, 세포가 주변 환경을 인식하는 단백질)과 FAK 신호전달(세포가 외부 신호를 받아 내부 반응으로 바꾸는 과정)이 활성화되면서 줄기세포의 기능이 강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세포가 주변 환경을 더 잘 감지하고 활발하게 반응하면서 스스로의 기능을 더 잘 발휘하게 된다는 의미다. 그 결과, 체내 이식 후 세포의 생존율이 높아지고 치료 효과도 함께 향상됐다.
전상용 교수는 “이번 연구는 합성 고분자 기반의 정밀한 3차원 배양 환경을 통해 줄기세포의 기능과 치료 효능을 동시에 향상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 성과”라며 “염증성 질환을 비롯한 다양한 난치성 질환 치료를 위한 차세대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에 폭넓게 활용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KAIST 이노코어(InnoCORE) AI-혁신신약연구단 서창진 박사가 제1 저자로 참여한 이번 연구는 국제학술지 `어드밴스드 사이언스(Advanced Science, Impact Factor: 14.1)' 3월 31일 字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 논문명: Polymer Matrix-Based 3D Culture Significantly Enhances the Differentiation and Immunomodulatory Functions of Human Adipose-Derived Stem Cells
※ https://doi.org/10.1002/advs.202518704.
한편 이번 연구는 범부처재생의료기술개발 사업단의 범부처재생의료기술개발사업, KAIST InnoCORE 프로그램, 한국연구재단의 리더연구사업(종양/염증 미세환경 표적 및 감응형 정밀 바이오-나노메디신 연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면역분자 STING, 세포 스트레스 반응 조절자
세포는 다양한 스트레스에 노출되면 이를 견디기 위해 일시적으로 단백질과 RNA를 모아 ‘스트레스 과립(stress granule)’을 형성한다. 이 구조는 세포가 위기 상황을 넘기는 데 도움을 주며 세포 사멸을 억제하지만, 비정상적으로 조절될 경우 신경퇴행성 질환의 병변과도 연결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스트레스 과립이 세포 내 소기관과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어 형성되는지는 아직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다.
우리 대학 생명과학과 강석조 교수 연구팀이 세균이나 바이러스의 침입을 알리는 ‘면역 파수꾼’으로 잘 알려진 STING(stimulator of interferon genes, 이하 STING) 단백질이 세포 내 소포체(endoplasmic reticulum)에서 스트레스 과립 형성을 미리 준비시키는 새로운 조절자라는 사실을 규명했다고 27일 밝혔다. 이번 연구는 STING이 기존에 알려진 면역 기능과는 완전히 다른 ‘비정형적(non-canonical)’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학술적 의미가 매우 크다.
연구팀은 세포가 실제 스트레스를 받기 전부터 STING이 스트레스 과립의 핵심 성분인 G3BP1, UBAP2L 단백질과 결합해 소포체 위에서 일종의 ‘전응집체(pre-condensate)’를 형성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전응집체는 나중에 닥칠 위기 상황에서 스트레스 과립이 더 빠르고 탄탄하게 만들어지도록 돕는 일종의 발판 역할을 한다. 실제로 STING이 부족한 세포는 스트레스 상황에서 보호소인 과립을 제대로 만들지 못해 세포 사멸이 크게 늘어나는 현상이 관찰되었다. 이전 연구에서는 세포질에 존재하는 스트레스 과립 형성을 조절하는 소포체 내 분자가 밝혀지지 않았는데 이번 연구에서 소포체에 위치한 STING이 스트레스 과립 형성의 스캐폴드(scaffold)로 작용함을 증명하여, 스트레스 과립의 소포체 위에서의 생성에 대한 분자적 기전을 규명했다.
이 발견은 일명 루게릭병으로 불리는 근위축성 측삭경화증(ALS, 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치료에도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루게릭병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ALS 환자에서 발견되는 돌연변이 TDP-43 단백질이 세포질 내에서 비정상적으로 뭉쳐 세포독성을 일으키는 것인데, 이번 연구를 통해 STING이 이 단백질의 병리적인 응집에 기여할 수 있음이 밝혀졌다. 즉, STING은 세포의 조건에 따라 세포를 살리는 방어 기전뿐만 아니라 신경 퇴행성 질환을 악화시키는 통로가 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강석조 교수는 “본 연구는 STING의 면역 단백질로서의 기능을 넘어 세포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중요한 세포생물학적 기능을 새롭게 밝히고, 막성 소기관인 소포체와 막이 없는 응축체인 스트레스 과립 사이의 연결 원리를 분자적 수준에서 최초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학문적 중요성을 갖는다”라고 언급하면서 “본 연구는 또한 세포 사멸과 ALS 관련 병리 현상을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함으로써, 향후 비정상적 스트레스 과립 조립이 관여하는 질환의 치료 표적 발굴에도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KAIST 생명과학과 엄은총 박사가 제 1저자로 연구를 주도하였고, 생명과학과 김재훈 교수와 김지현 박사 (現 오름테라퓨틱)가 함께 참여하였다. 이번 연구 결과는 세포사멸 분야의 권위 있는 학술지인 ‘셀 데쓰 앤 디퍼런시에이션(Cell Death and Differentiation)’에 4월 1일 자 온라인판으로 게재되었다.
※ 논문명 : STING is the scaffold protein for stress granule pre-condensation at the ER, DOI: https://doi.org/10.1038/s41418-026-01734-5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의 개인기초연구사업(중견연구)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백혈병 항암제 ‘두 얼굴의 단백질’ 규명..내성 극복 실마리
항암제가 암세포를 죽이는 진짜 이유가 밝혀졌다. 한국연구진은 표적항암제가 단순히 암 단백질을 막는 것이 아니라, 세포 내부의 ‘단백질 공장’을 멈춰 세우고 스스로 죽게 만든다는 사실을 규명했다. 이 ‘자멸 과정’을 더 강하게 유도하면 약이 잘 듣지 않던 암세포도 다시 죽일 수 있어, 이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두 얼굴의 단백질’이 약물 내성 환자 치료의 돌파구로 주목된다.
우리 대학은 생명과학과 임정훈 교수, 의정부을지대학교병원(원장 송현)혈액암센터 김동욱 교수, UNIST(총장 박종래) 김홍태 교수 공동연구팀이 만성골수성백혈병 항암제의 반응을 조절하는 새로운 분자 기전을 규명했다고 23일 밝혔다.
만성골수성백혈병은 조혈모세포에 유전적 이상이 생겨 ‘BCR::ABL1’이라는 비정상 단백질이 만들어지면서 발생한다. 이 단백질은 세포에 지속적인 성장 신호를 보내 암세포를 계속 증식시키는 주요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억제하는 표적항암제가 현재 표준 치료로 사용되고 있지만, 일부 환자에서는 약물 내성이 발생하거나 치료 반응이 낮은 한계가 있었다.
연구팀은 항암제가 세포 내 단백질 생산 과정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했다. 그 결과, 항암제가 투입되면 단백질을 만드는 리보솜(Ribosome)의 흐름이 꼬이면서 서로 부딪히는 ‘리보솜 충돌’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과정에서 세포 내부에 강한 스트레스가 유발되고, 결국 암세포가 스스로 죽음에 이르게 된다.
특히, 연구팀은 리보솜 충돌을 감지하는 핵심 센서로 ZAK 단백질을 지목했고 ZAK 단백질이 상황에 따라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평소에는 AKT 신호*와 결합해 암세포가 잘 자라도록 돕는 조력자 역할을 하지만, 표적 항암제 치료가 시작되면 리보솜 충돌을 감시해 암세포 사멸을 이끄는 감시자로 돌변한다. 똑같은 단백질이 암의 진행 과정과 치료 과정에서 정반대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음을 세계 최초로 입증한 것이다.
*세포의 생존, 성장, 증식, 대사 및 이동을 조절하는 핵심 세포 내 신호 전달 경로
연구팀은 실제 백혈병 환자 유래 암세포를 분석해 이 기전을 검증했다. 리보솜 충돌을 증가시키는 약물을 함께 사용할 경우 항암 효과가 크게 향상됐으며, 반대로 ZAK 기능이 저하된 경우에는 항암제 반응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이번 연구에 따르면 내성환자들은 ZAK 기능 저하 또는 리보솜 스트레스 반응 부족으로 예측된다. 이는 환자별 ZAK 활성 상태를 기반으로 치료 반응을 예측하고, 맞춤형 병용 치료 전략을 설계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번 연구는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에서 리보솜 스트레스 신호 경로의 중요성을 제시한 성과로, 향후 표적항암제의 효과를 높이고 새로운 병용 치료 전략 개발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약물 내성으로 치료에 어려움을 겪는 환자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할 전망이다.
임정훈 교수는 “이번 연구는 세포가 비정상적인 단백질 합성을 감지하고 이를 죽음의 신호로 전환하는 과정이 치료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제1 저자인 박주민 박사는 “리보솜 충돌이 암세포 사멸을 결정하는 핵심 스위치임을 확인한 만큼, 다양한 암종으로 연구를 확장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KAIST 박주민 박사가 제1 저자로 참여한 이번 연구 결과는 혈액학 분야 최고 권위 학술지 중 하나인 ‘루케미아(Leukemia)’에 3월 30일 온라인 게재됐다.
※ 논문명 : BCR::ABL1 tyrosine kinase inhibitors induce ribosome collisions to activate ZAK-dependent ribotoxic stress and apoptosis in chronic myeloid leukemia, DOI: https://doi.org/10.1038/s41375-026-02916-3
한편, 이번 연구는 서경배과학재단, 한국연구재단 중견연구자지원사업, 기초연구실지원사업, KAIST 정착과제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이노코어 연구단, 노벨화학상 데이비드 베이커와 ‘AI 단백질 설계’ 성공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이노코어(InnoCORE) 사업을 통해 구축된 연구 협력 기반 아래, KAIST 이노코어 연구진이 의미 있는 연구 성과를 도출했다. 우리 대학은 2024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David Baker 교수(데이비드 베이커, 미국 워싱턴대학교)의 방문을 계기로, 공동연구를 통해 AI로 원하는 화합물을 정확히 인식하는 단백질 설계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우리 대학은 생명과학과 이규리 교수가 AI-CRED 혁신신약 이노코어(InnoCORE) 연구단에 참여 중인 연구진으로서, David Baker 교수와의 공동 연구를 통해 특정 화합물을 선택적으로 인식하는 인공 단백질을 AI로 설계하는 데 성공했다고 9일 밝혔다.
이번 연구는 AI를 활용해 특정 화합물을 인식하는 단백질을 처음부터 설계(de novo)하고, 이를 실제로 작동하는 바이오 센서로 구현한 것이 특징이다. 기존에는 자연 단백질을 탐색하거나 일부 기능을 수정하는 방식이 주를 이뤘다면, 이번 연구는 AI 기반 설계를 통해 원하는 기능을 갖는 단백질을 ‘맞춤 제작’하고 실험적으로 검증까지 완료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연구진은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솔(cortisol)을 선택적으로 인식하는 단백질을 설계하고, 이를 기반으로 AI가 설계한 바이오 센서를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단백질 설계에 그치지 않고 실제 측정 가능한 센서 기술로 확장한 것으로, 단백질 설계 분야의 오랜 난제였던 저분자 화합물 인식 문제를 해결한 사례로 평가된다.
이번 연구 성과는 향후 질병 진단, 신약 개발, 환경 모니터링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혈액 속 바이오마커를 정밀하게 감지해 질병을 조기에 진단할 수 있으며, 특정 분자를 선택적으로 인식하는 단백질 설계를 통해 표적 치료제 개발에도 기여할 수 있다. 또한 환경 오염 물질을 감지하는 센서 개발로 공기와 수질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 등 맞춤형 바이오 센서 기술 구현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화합물을 인식하는 신규 단백질(de novo protein) 설계는 원자 단위의 정밀한 계산이 필요해 오랜 기간 단백질 설계 분야의 난제로 꼽혀왔다. 연구진은 단백질-리간드 상호작용을 정밀하게 반영하는 AI 모델을 개발하고, 이를 활용해 결합 단백질 설계에 성공했다.
그 결과, 대사물질과 저분자 약물을 포함한 6종의 화합물 각각에 대해 인공 결합 단백질을 설계하고, 실험을 통해 기능을 검증했다. 특히 코티솔과 결합하는 신규 단백질을 기반으로 화학 유도 이합체(chemical-induced dimer)를 설계해 코티솔 바이오 센서를 개발했다. 해당 설계 기술은 미국에서 임시 특허를 출원한 상태다.
이규리 교수는 “이번 연구는 AI를 활용해 특정 화합물을 정밀하게 인식하는 단백질을 설계할 수 있음을 실험적으로 입증한 것”이라며 “앞으로 질병 진단, 신약 개발, 환경 모니터링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는 단백질 설계 기술로 확장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KAIST 생명과학과 이규리 교수가 제1저자로, David Baker 교수가 교신저자로 참여했으며, 2026년 3월 28일 국제 학술지 Nature Communications에 게재됐다.
※논문명: Small-molecule binding and sensing with a designed protein family
DOI: https://doi.org/10.1038/s41467-026-70953-8
이규리 교수는 2025년 2월 KAIST에 부임한 신임 교수로, 단백질 디자인 연구실을 이끌고 있다. 원자 단위의 정밀한 단백질 복합체 설계 분야에서 세계적인 전문성을 보유하고 있으며, AI 기반 단백질 설계, 인공 효소 설계, RNA 인식 단백질 개발 등 다양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또한 InnoCORE 사업의 AI-CRED 혁신신약 연구단 소속 멘토 교수로 참여해 효소 및 펩타이드 신약 설계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이 교수는 2018년부터 2024년까지 David Baker 교수 연구실(미국 워싱턴대학교, Howard Hughes Medical Institute)에서 박사후연구원 및 Staff Scientist로 연구를 수행했다. David Baker 교수는 단백질 구조 예측과 설계 분야의 세계적 석학으로, 2024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AI-CRED 혁신신약 연구단 멘토 교수인 이도헌 처장은 “이번 성과는 이노코어 연구진과 글로벌 석학 간 협력을 통해 도출된 의미 있는 결과”라며, “앞으로도 이노코어 사업을 통해 유치한 박사후연구원들과의 적극적인 연구 협업을 기반으로 연구 역량을 더욱 강화해 AI 신약 개발과 바이오 분야에서 지속적인 혁신 성과를 창출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KAIST는 David Baker 교수의 방한을 계기로, 4월 9일(목) 오후 4시 KI 빌딩 퓨전홀에서 Hannele Ruohola-Baker 교수(한넬레 루오홀라-베이커, 미국 워싱턴대학교)와 함께 ‘Advances in AI-powered protein design and biomedical science(인공지능 기반 단백질 설계 및 생의학 연구의 최신 동향)’를 주제로 강연을 개최할 예정이다. 본 행사는 KAIST 해외 석학 초빙 교수 지원 사업, KAI-X, InnoCORE AI-CRED 혁신신약단, 그리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해외우수연구기관협력허브구축 사업의 지원으로 진행된다.
이광형 KAIST 총장은 “노벨 화학상 수상자 David Baker 교수와의 협력을 통해 AI 기반 단백질 설계라는 의미 있는 성과를 도출했다”며 “이번 연구는 KAIST가 세계적인 연구기관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혁신 연구를 선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밝혔다.
한편, KAIST 이노코어(InnoCORE) 연구단은 국내·외 최상위 박사후연구원이 첨단 집단연구 환경에서 AI 융합기술 개발에 매진하도록 지원함으로써 글로벌 공동연구를 촉진하고, AI 기반 과학기술 혁신을 가속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KAIST는 주관기관으로서 ▲초거대언어모델 혁신 연구단 ▲AI 기반 지능형 설계–제조 통합 연구단 ▲AI-CRED 혁신신약 연구단 ▲AI-Transformed Aerospace 연구단을 운영하고 있다.
꽃은 곤충 맞춰 피고 향기 내는 ‘생체시계’ 있다
아침에 피는 나팔꽃, 밤이 되면 향기를 내뿜는 꽃들은 마치 시간을 아는 듯하다. 우리 대학 연구팀이 식물이 곤충 행동에 맞춰 ‘생체시계’를 통해 꽃의 개화와 향기 방출 시점을 정교하게 조절하는 원리를 분자 수준에서 밝혀냈다. 이번 연구는 개화 시간와 향기 조절 기술로의 확장 가능성을 제시한다.
우리 대학은 생명과학과 김상규 교수 연구팀이 식물 생체시계의 조절을 받는 유전자가 꽃이 열리는 시간과 향기 방출의 일주기 리듬을 통합적으로 조절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27일 밝혔다.
식물은 하루 주기에 맞춰 스스로 시간을 인식하는 ‘생체시계’에 의해 생리 현상이 조절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꽃이 실제로 어떤 과정을 거쳐 열리며, 이 과정이 생체시계 유전자와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팀은 밤에 꽃을 활짝 열고 향기를 방출하는 식물인 ‘코요테담배(Nicotiana attenuata)’를 모델로 연구를 진행했다. 코요테담배는 미국 유타주 사막 지역에 자생하는 식물로, 밤에 활동하는 꽃가루 전달자를 유인하기 위해 야간에 꽃을 열고 향기를 방출하는 특징을 가진다.
이러한 현상에 착안해 생물학자 린네는 서로 다른 시간에 꽃이 피고 지는 식물들을 한곳에 모으면 꽃의 개화 상태만으로도 시간을 알 수 있을 것이라 보고, ‘꽃 시계(flower clock)’를 제안하기도 했다.
기존 연구는 꽃의 발달과 관련된 유전자 발현 변화를 분석하는 데 주로 초점이 맞춰져 있었으나, 실제 꽃이 열리는 현상과 이를 조절하는 유전자 기능을 직접 규명한 연구는 제한적이었다. 연구팀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생체시계 유전자에 변이가 있는 돌연변이체를 분석하고, 분자생물학적 접근을 통해 꽃의 개화와 향기 방출이 어떻게 조절되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연구팀은 특정 생체시계 유전자가 꽃이 열리는 시점과 향기 방출의 리듬을 조절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는 식물이 자신의 생존과 번식에 가장 유리한 시간대에 꽃을 열고 수분 매개자를 유인하도록 생체시계를 정교하게 활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연구는 꽃의 개화와 향기 방출을 조절하는 유전자 네트워크를 생체시계의 관점에서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아울러 식물의 시간 조절 전략과 생태적 상호작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김상규 교수는 “이번 연구는 식물의 생체시계가 꽃의 개화와 향기 방출 시간을 어떻게 연결해 조절하는지에 대한 단서를 제시했다”며 “식물이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번식 전략을 최적화하는 원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기초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생명과학과 최유리 박사, 강문영 박사가 제1저자로 참여한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더 플랜트 셀(The Plant Cell)에 1월 29일 자 게재됐다.
※논문명: CONSTANS-LIKE 5 facilitates flower opening and scent biosynthesis in Solanaceae https://doi.org/10.1093/plcell/koag016
한편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합성생물학 핵심기술개발사업, 중견연구자지원사업 및 농촌진흥청 차세대농작물신육종기술개발사업의 지원을 받았다.
노화 유발 RNA 노폐물 제거했더니‘수명 연장’ 확인
우리 몸의 세포는 DNA에 저장된 유전 정보를 바탕으로 RNA를 만들고, RNA는 단백질을 만드는 설계도 역할을 한다. 우리 대학 연구진은 나이가 들수록 세포에 쌓이는‘원형 RNA(circular RNA)’를 제거해 노화를 늦추고 수명을 늘리는 새로운 현상을 발견했다. 이번 연구는 노화의 원리를 밝히고 관련 질환 치료 전략 개발에 중요한 단서를 제시했다.
우리 대학 생명과학과 이승재 교수 연구팀(RNA 매개 건강 장수 연구센터)은 김윤기 교수·이광록 교수 연구팀과 공동연구를 통해, 원형 RNA를 분해하는 효소인 RNASEK(알엔에이즈케이) 단백질이 노화를 늦추고 수명을 늘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18일 밝혔다.
그동안 원형 RNA는 안정성이 높아 분해되지 않고 나이가 들수록 세포에 축적되는 ‘노화의 지표’ 정도로만 알려져 있었지만, 이러한 RNA를 제거하는 분자적 기전과 노화와의 직접적인 연관성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팀은 원형 RNA의 축적이 노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이를 조절하는 세포 내 관리 시스템이 존재하는지를 규명하기 위해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팀은 먼저 수명이 짧아 노화 연구에 널리 사용되는 예쁜꼬마선충(C. elegans)을 활용한 실험에서 RNA 분해 효소인 RNASEK 단백질이 장수에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한 노화가 진행되면서 RNASEK의 양이 감소하고, 그 결과 원형 RNA가 세포 안에 비정상적으로 많이 축적된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반대로 RNASEK의 양을 인위적으로 늘리면(과발현) 수명이 연장되고 건강한 상태로 더 오래 생존했다. 이는 세포 내 원형 RNA를 적절히 제거하는 과정이 장수와 건강 유지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구팀은 또한 RNASEK가 원형 RNA가 서로 뭉쳐 독성을 만드는 현상을 막아 준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RNASEK 결핍 시 원형 RNA가 많이 쌓이면 세포 안에 ‘스트레스 과립(stress granule)’이라는 덩어리가 비정상적으로 형성되는데, 이는 세포 기능을 떨어뜨리고 노화를 촉진할 수 있다.
RNASEK는 샤페론 단백질 HSP90(단백질이 잘못 접히거나 서로 뭉치지 않도록 돕는 단백질)과 함께 작용해 이러한 스트레스 과립의 형성을 억제하고 세포가 정상 상태를 유지하도록 돕는다. 특히 이러한 현상은 예쁜꼬마선충 뿐 아니라 생쥐와 인간 세포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났다. 포유류에서도 RNASEK는 원형 RNA를 직접 분해하는 기능을 갖고 있으며, 인간 세포와 생쥐 모델에서 RNASEK가 결핍되면 조기 노화 현상이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가 RNA 수준의 노화 조절 메커니즘을 규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RNASEK를 이용해 원형 RNA를 조절하는 연구가 향후 인간 노화와 퇴행성 질환 치료 전략 개발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시했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KAIST 생명과학과 이승재 교수는 “지금까지 원형 RNA는 안정성이 높아 나이가 들수록 축적되는 노화의 지표 정도로만 여겨져 왔다”라며 “이번 연구는 노화에 따라 축적되는 원형 RNA가 실제로 노화를 유도하며, 이를 제거하는 RNASEK가 노화를 늦추고 건강한 장수를 유도하는 핵심 조절자임을 증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에는 KAIST 생명과학과 김시은 박사, 함석진 박사, 부성호 박사, 이동훈 박사가 공동 제1저자로 참여했으며, 연구 결과는 세계적 과학 학술지 Molecular Cell에 2월 24일 자로 게재됐다.
※논문명: Ribonuclease κ promotes longevity by preventing age-associated accumulation of circular RNA in stress granules, DOI: 10.1016/j.molcel.2026.01.031
한편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리더연구과제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세포 속 ‘유전자 지도’ 한번에 해독...치매·암 연구 게임체인저
질병의 시작점은 단 한 개의 세포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개별 세포의 변화를 정밀하게 들여다보는 데 한계가 있어, 수천~수만 개 세포의 평균값을 분석하다 보니 질병의 ‘초기 신호’를 정확히 포착하기 어려웠다. 우리 대학 연구진이 마치 구글어스로 지구를 확대하듯, 그 세포 속 유전 설계도를 입체적으로 동시에 해독하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구현했다. 암과 치매, 파킨슨병 등 복잡 질환 연구의 판을 바꿀 성과다.
우리 대학은 생명과학과 정인경 교수 연구팀이 미국 듀크대학교 야루이 디아오(Yarui Diao) 교수팀과 공동연구를 통해, 단일 세포에서 ▲유전자 발현(전사체) ▲후성유전체 ▲게놈 3차 구조를 동시에 분석하는 세계 최초의 초정밀 분자지도 해독 기술 ‘scHiCAR(에스씨하이카, single-cell Hi-C with assay for transposase-accessible chromatin and RNA sequencing)’를 개발했다고 4일 밝혔다.
세포의 상태를 결정하는 핵심은 결국 유전자의 작동 방식이다. 유전자는 단순히 켜지고 꺼지는 스위치가 아니다. 어떤 유전자가 실제로 작동하는지(전사체), 왜 작동하는지(후성유전체), 어떤 공간 구조 속에서 작동하는지(게놈 3차 구조)가 함께 맞물려 세포의 운명을 결정한다. 기존 기술은 이 정보를 각각 다른 세포에서 따로 얻은 뒤 사후에 맞춰야 했기 때문에, 미세한 변화가 왜곡되거나 누락될 수 있었다.
연구팀은 전사체, 후성유전체, 3차 게놈 구조 등 이 세 가지 유전 정보를 단일 세포에서 동시에 분석하는 통합 정밀 분석 기술인 ‘트라이모달 멀티오믹스(trimodal Trimodal Multi-omics)’ 기술을 구현했다. 여기에 인공지능(AI) 분석을 접목해 정확도와 재현성을 크게 높였다. 그 결과, 세포 내부의 유전 정보를 ‘한 장의 입체 지도’처럼 읽어내는 통합 분석 플랫폼을 완성했다.
특히 세포 하나당 분석 비용을 약 0.04달러(한화 약 50원) 수준으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이를 통해 생쥐 뇌 조직 내 160만 개 세포에 대한 고해상도 분자지도를 구축했다. 이는 질병 유전자가 언제, 어디서, 어떤 구조 속에서 켜지고 꺼지는지를 세포 단위에서 정밀하게 규명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연구팀은 해당 기술을 뇌 조직과 근육 재생 과정에 적용해 22개 주요 세포 유형의 서로 다른 유전자 작동 원리를 밝혀냈다. 특히 근육 줄기세포가 재생되는 과정에서 유전자의 입체 구조가 동적으로 변화하며 세포 운명을 결정하는 과정을 단일 세포 수준에서 실시간으로 추적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노화 및 난치 질환 치료 전략 개발의 핵심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정인경 교수는 “이번 연구는 세포를 관찰하는 수준을 넘어, 세포 내부 유전체 설계도를 정밀하게 읽고 제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며 “파킨슨병과 암 등 복잡 질환의 발생 기전을 밝히고 환자 맞춤형 신약 타깃을 발굴하는 데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KAIST 양동찬 박사가 공동 제1저자로 그리고 KAIST 김규광 박사가 주요 연구진으로 참여했으며, 국제 학술지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Nature Biotechnology, IF=46.9)’에 2월 19일 자로 게재됐다.
※ 논문명: Trimodal single-cell profiling of transcriptome, epigenome and 3D genome in complex tissues with scHiCAR, DOI: 10.1038/s41587-026-03013-7
한편, 이번 연구는 서경배과학재단과 삼성미래기술연구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연구재단의 기초연구사업 및 바이오의료기술개발 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잡초의 반란’...까마중을 의약품 원료 공장으로 바꾸다
검은 열매 모양이 까마귀 눈을 닮았다고 해서 ‘까마중’이라는 불리는 길가나 빈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잡초가 현대 의학의 필수품인 호르몬제 원료를 생산하는 ‘보물 창고’로 탈바꿈했다. 국내 연구진이 유전자 교정 기술을 활용해 까마중의 대사 경로를 재설계함으로써, 병원에서 널리 쓰이는 스테로이드계 의약품의 핵심 원료를 고효율로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우리 대학은 검은 열매 모양이 까마귀 눈을 닮았다고 해서 ‘까마중’이라는 불리는 길가나 빈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잡초가 현대 의학의 필수품인 호르몬제 원료를 생산하는 ‘보물 창고’로 탈바꿈했다. 국내 연구진이 유전자 교정 기술을 활용해 까마중의 대사 경로를 재설계함으로써, 병원에서 널리 쓰이는 스테로이드계 의약품의 핵심 원료를 고효율로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디오스게닌은 현대 약학에서 핵심적인 출발 물질이다. 소염제와 가려움증 치료제 등 일상에서 널리 사용되는 스테로이드 호르몬제의 합성 원료로 활용된다. 현재는 주로 ‘마(Dioscorea)’의 뿌리에서 추출하지만, 마는 수확까지 수년이 소요되고 유전자 조작이 어려워 생산량 확대에 한계가 있었다.
연구팀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한 세대가 약 3개월로 짧고 유전자 조절이 용이한 ‘까마중(Solanum nigrum)’에 주목했다. 까마중은 원래 독성 스테로이드 성분인 ‘솔라소딘(Solasodine)’을 생성하는데, 연구진은 이 물질이 디오스게닌과 구조적으로 매우 유사하다는 점에 착안했다.
연구팀은 유전자 가위(CRISPR-Cas9) 기술을 활용해 까마중의 특정 유전자인 ‘게임4(SnGAME4)’를 교정했다. 이를 통해 독성 성분으로 이어지는 대사 경로를 차단하고, 대신 디오스게닌이 생성되도록 대사 흐름을 전환했다. 또한 잎 조직에서 반응을 조절하는 ‘게임25(SnGAME25)’ 까마중 유전자를 추가로 억제해 열매와 잎 모두에서 디오스게닌 축적량을 극대화했다.
특히 이번 연구에서는 까마중이 자체적으로 보유한 효소인 베타-글루코시다아제(SaF26G)를 활용해 성분을 추출이 용이한 형태로 전환하는 ‘자연 발효’ 공정을 접목했다. 그 결과, 까마중의 녹색 열매에서 기존 산업용 원료 식물인 마와 유사한 수준의 디오스게닌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 더해 경상국립대 연구팀이 개발한 ‘열매 수확량 증대 기술(S 유전자* 변이)’을 적용해 식물 한 개체당 열매 생산량을 대폭 향상시켰다. 이를 통해 동일 면적에서 보다 많은 의약품 원료를 생산할 수 있는 산업적 기반도 마련했다.
*S 유전자 변이: S유전자(compound inflorescence)는 식물의 꽃대 형성을 조절하는 유전자로, 발현양 조절을 통해 한 개체당 열매 생산량을 늘릴 수 있음
김상규 교수는 “이번 연구는 잡초가 지닌 고유한 대사 경로를 정교하게 재설계해 고부가가치 약용 성분을 생산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라며 “향후 스테로이드 의약품 원료를 보다 안정적이고 환경친화적인 방식으로 확보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에는 KAIST 임종부 박사와 경상국립대 김근화 박사, 허정 박사가 공동 제1저자로 참여했으며, 연구 성과는 식물과학 분야 국제학술지 플랜트 바이오테크놀로지 저널(Plant Biotechnology Journal) 1월 16일 자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논문명: Rewiring Steroidal Metabolic Pathways for Diosgenin Production in Solanum nigrum, DOI: 10.1111/pbi.70551
한편, 본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합성생물학 핵심기술개발사업, 중견연구자지원사업 및 농촌진흥청 차세대농작물신육종기술개발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70년 만에 토종 ‘광대싸리’ 항암물질 생성 비밀 밝혀
식물 유래 약 성분은 많지만, 식물이 이를 어떻게 만들어 내는지는 오랫동안 미스터리였다. 우리 대학 연구진이 70년 만에 토종 약용식물 광대싸리에서 항암 성분인 세큐리닌이 생성되는 전 과정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이번 성과로 실험실과 미생물 공장에서 항암 물질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우리 대학은 생명과학과 김상규 교수 연구팀과 화학과 한순규 교수 연구팀이 우리나라 자생 식물인 광대싸리에서 항암 효과로 알려진 세큐리닌(securinine) 계열 물질이 만들어지는 핵심 과정을 규명했다고 30일 밝혔다.
광대싸리는 우리나라 산과 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관목으로, 동북아시아 지역에서는 오래전부터 잎과 뿌리를 약재로 사용해 왔다. 이 식물에는 세큐리닌을 비롯한 다양한 알칼로이드 성분이 들어 있어 신약 개발 가능성이 높은 약용식물로 주목받아 왔다.
세큐리닌은 1956년 광대싸리에서 처음 발견된 이후 지금까지 130종이 넘는 관련 물질이 보고됐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항암 효과를 보이거나, 뇌로 잘 전달돼 신경 재생을 돕는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렇게 중요한 물질들이 식물 안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지난 70년간 밝혀지지 않은 난제였다.
생명체 안에서 천연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생합성’이라고 한다. 이는 최종 물질이 만들어지기까지 어떤 중간 단계를 거치고, 어떤 효소가 작용하는지를 밝히는 일이다. 모르핀, 카페인, 니코틴 등 식물이 만들어내는 약효가 강한 천연 성분인 알칼로이드는 구조가 매우 복잡해 생합성 과정을 규명하기 특히 어려운 물질로 알려져 있다.
이번 연구에서는 화학과 생명과학의 협력이 핵심 역할을 했다. 세큐리닌 계열 물질의 화학적 합성을 오랫동안 연구해 온 한순규 교수 연구팀과, 식물 유전체 분석과 단일세포 분석에 강점을 가진 김상규 교수 연구팀이 공동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김상규 교수 연구팀은 성남시 불곡산 일대의 ‘KAIST 생태림’에서 광대싸리를 확보해 연구 시료를 만들고, 식물의 유전체를 정밀 분석했다. 특히 세큐리닌 생성이 활발한 잎 조직을 대상으로 단일세포 전사체 분석을 수행해, 어떤 세포에서 어떤 유전자가 작동하는지를 세밀하게 추적했다.
한편 한순규 교수 연구팀은 세큐리닌이 만들어지기 바로 전 단계의 물질로 ‘비로신 B’를 찾아내고, 이를 실험실에서 직접 만들어 그 변화를 관찰했다. 그 결과, 식물 속 효소인 ‘황산전이효소’가 비로신 B를 항암 성분 세큐리닌으로 바꾸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는 황산전이효소가 단순히 화학 성분을 붙이는 보조 역할이 아니라, 알칼로이드의 구조 자체를 바꾸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처음으로 보여준 연구 결과다.
김상규 교수와 한순규 교수는 “이번 연구는 우리나라 자생 식물에서 얻을 수 있는 고부가가치 천연물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분자 수준에서 밝힌 것”이라며 “앞으로 미생물이나 세포를 이용해 항암 물질을 안정적으로 생산하고, 다양한 의약학적 응용으로 이어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에는 KAIST 정성준 박사후연구원, 강규민 박사후연구원, 김태인 석박통합과정생이 공동 제1저자로 참여했으며, 연구 성과는 국제 저명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 IF 15.7)에 1월 23일 게재됐다.
※ 논문명: Chemically guided single-cell transcriptomics reveals sulfotransferase-mediated scaffold remodeling in securinine biosynthesis, DOI: doi.org/10.1038/s41467-026-68816-3
이번 연구는 과기부 한국연구재단의 중견 합성생물학, 농촌진흥청 NBT사업단의 차세대농작물신육종기술개발, KAIST 생태연구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지방 세포 생성을 멈추는 '스위치' 발견
비만과 지방간, 인슐린 저항성 등 대사질환은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지방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근본적으로 조절할 방법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특히 지방세포는 한 번 형성되면 쉽게 줄어들지 않아 치료가 어렵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 대학 연구진이 지방 형성을 막는 ‘스위치’가 존재함을 밝혀냈다. 이번 발견은 DNA 자체를 바꾸지 않고 유전자의 작동을 조절하는 ‘후성유전체 스위치’가 지방세포 생성 과정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규명한 것으로, 향후 비만과 대사질환을 보다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우리 대학 생명과학과 임대식 교수와 강주경 교수 연구팀은 히포(Hippo) 신호전달경로*의 핵심 조절 인자인 ‘얍/타즈(YAP/TAZ)’가 지방세포 분화과정**에서 후성유전체 수준의 ‘분화 억제 스위치’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규명했다고 25일 밝혔다. 연구팀은 얍/타즈가 자신의 하위 표적인 ‘비글스리(VGLL3)’를 통해 지방세포 형성을 담당하는 유전자들의 작동을 광범위하게 억제하는 새로운 메커니즘을 제시했다.
*히포 신호전달경로: 세포가 언제 자라고, 언제 분열을 멈추고 분화할지를 조절하는 일종의 세포 운행 통제 시스템
**지방세포 분화과정: 지방 전구세포(또는 줄기세포)가 성숙한 지방세포로 변화하는 과정
세포 분화는 단순히 하나의 유전자가 켜지고 꺼지는 문제가 아니라, 여러 유전자와 DNA 조절 부위가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복합적인 과정이다. 연구팀은 전구세포*가 지방세포로 분화하는 전 과정을 추적하며, 유전자 발현 변화와 후성유전체 변화를 동시에 분석할 수 있는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 기술을 활용했다.
*전구세포: 어떤 세포가 될지 이미 방향이 정해진, 성장 중인 중간 단계 세포
그 결과, 얍/타즈(YAP/TAZ)가 활성화된 조건에서는 지방세포라고 확인해주는 정체성을 만드는 유전자 프로그램이 작동하지 못하고, 피피에이알감마(PPARγ)*를 중심으로 한 지방세포 분화 네트워크 전반이 억제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피피에이알감마(PPARγ): 몸속 에너지 저장과 사용을 조절하는 ‘대사 마스터 스위치’조절자
특히 연구팀은 지방조직 단일세포 분석을 통해, 얍/타즈(YAP/TAZ)의 새로운 표적 유전자로 비글스리(VGLL3)를 발굴했다.
기존에는 얍/타즈(YAP/TAZ)가 피피에이알감마(PPARγ)와 직접 결합해 그 기능을 억제한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이번 연구에서는 비글스리(VGLL3)가 지방세포 유전자들의 DNA 조절 부위인 ‘인핸서’를 억제해 지방세포 분화 프로그램 전체를 간접적으로 제어한다는 점을 밝혀냈다. 이는 지방세포가 언제, 얼마나 강하게 만들어질지를 결정하는 핵심 타이밍 조절에 히포 신호전달 경로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방조직의 기능 이상은 비만, 인슐린 저항성, 지방간 등 다양한 대사질환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에서 제시한 얍/타즈-비글스리-피피에이알감마(YAP/TAZ–VGLL3–PPARγ) 축의 조절 원리가 지방세포 형성과 기능 이상에 어떻게 관여하는지에 대한 후속 연구를 통해 더욱 구체적으로 밝힘으로써, 향후 대사질환을 조절하거나 치료하는 새로운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임대식 교수는 “이번 연구는 지방세포 분화가 단순한 유전자 조절을 넘어, 후성유전체 수준에서 정교하게 제어된다는 점을 최초로 규명한 성과”라며, “지방세포의 정체성 변화 기전을 보다 정밀하게 이해하고, 장기적으로는 대사질환 환자 맞춤형 치료 전략으로 이어질 중요한 토대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KAIST 생명과학과 박사과정 설태준 학생과 강주경 박사가 공동 제 1 저자로 참여하여 세계적인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스즈(Science Advances)에 1월 14일자로 출판되었다.
※ 논문명: YAP/TAZ-VGLL3 governs adipocyte fate via epigenetic reprogramming of PPARγ and its target enhancers, DOI:10.1126/sciadv.aea7235
한편, 이번 연구는 과기부 한국연구재단이 지원하는 리더연구자 지원사업, 해외우수과학자 유치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AI가 포착한 우울증
주요 우울 장애 등 정신건강 질환은 주관적 설문과 면담으로 진단한다. 복합적이고 모호한 ‘우울감’은 우울증 진단의 가장 큰 한계로 꼽혀왔다. 국내 연구진이 AI로 일상행동을 분석해 우울증을 객관적으로 진단하고 치료 효과를 평가하는 기술을 개발하며, 정신질환 진단과 치료의 새로운 해법을 제시했다.
우리 대학은 생명과학과 허원도 석좌교수 연구팀이 동물 모델의 일상적인 행동 패턴을 분석할 수 있는 인공지능(AI)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통해 일상행동 속에서 성별과 중증도에 따른 우울증 증상을 탐지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고 13일 밝혔다.
연구팀은 우울증 환자의 팔다리 움직임, 자세, 표정 등 신체 운동 양상이 일반인과 다르다는 점에 주목했다. 감정과 정서 상태가 운동 능력으로 드러나는 현상인 ‘정신운동(psychomotor)’을 정밀하게 파악하기 위해, 연구팀은 실험동물의 자세와 움직임을 3차원으로 분석해 우울 상태에 따른 미세한 행동 변화를 자동으로 포착할 수 있는 AI 플랫폼‘클로저(CLOSER, Contrastive Learning-based Observer-free analysis of Spontaneous behavior for Ethogram Representation)’를 개발했다.
클로저는 인공지능 기법인 (contrastive learning) 알고리즘을 활용해 행동을 아주 작은 단위로 나눠 분석한다. 이를 통해 사람의 눈으로는 알아차리기 어려운 미세한 행동 변화까지 정확하게 구분해냈다.
연구팀은 이 기술을 활용해 우울증과 가장 유사한 만성 예측 불가능 스트레스(CUS, Chronic Unpredictable Stress) 마우스 모델을 만들고, 행동만으로 일상 속 우울 상태를 구별할 수 있는지를 검증했다. 그 결과, 클로저는 성별과 증상의 심한 정도에 따라 달라지는 우울 상태를 정확히 구분하는 데 성공했다.
사후 분석 결과, 스트레스는 운동 능력 자체보다는 행동의 빈도와 행동 흐름을 바꾸는 데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특히 우울증 모델에서 스트레스에 의해 변화한 행동 음절은 성별에 따라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예를 들어, 수컷 생쥐에서는 주변을 탐색하거나 회전하는 행동이 감소한 반면, 암컷 생쥐에서는 이러한 행동이 오히려 증가했다. 이러한 일상행동 변화는 스트레스 노출 기간이 길어질수록 더욱 두드러졌다.
또한 연구팀은 우울증의 발생 원인이 행동 패턴에 반영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염증 기반 우울증 모델과 스트레스 호르몬 기반 우울증 모델을 추가로 분석했다.
그 결과, 지속적인 스트레스나 염증으로 우울 상태를 만든 경우에는 일상 행동이 눈에 띄게 달라졌지만, 스트레스 호르몬(콜티코스테론)만 투여한 경우에는 행동 변화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이는 일상적인 행동 관찰만으로도 우울증의 원인이나 성별에 따라 서로 다른 상태를 구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나아가 연구팀은 실제로 우울증 환자 치료에 사용되거나 임상시험 중인 항우울제가 행동으로 나타나는 우울증 증상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우울증 모델에 항우울제를 투여한 결과, 스트레스로 인해 변화했던 행동 음절(기본적인 행동 단위)과 행동 문법(행동의 흐름과 패턴)이 부분적으로 회복되는 것을 확인했다.
특히 항우울제마다 사람의 행동을 회복시키는 방식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연구진은 행동만 살펴봐도 어떤 약이 더 잘 듣는지 구분할 수 있는 ‘행동 지문(behavioral fingerprint)’을 찾아냈다. 이는 앞으로 사람마다 행동 변화를 분석해 가장 잘 맞는 항우울제를 골라주는 맞춤 치료로 이어질 수 있음을 뜻한다.
허원도 석좌교수는 “이번 연구는 인공지능 기반 일상행동 분석 플랫폼을 우울증 진단에 접목해, 우울장애의 맞춤형 진단과 치료 평가를 가능하게 하는 전임상 프레임워크를 세계 최초로 구현한 성과”라며, “향후 정신질환 환자 맞춤형 치료제 개발과 정밀의료로 이어질 중요한 토대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KAIST 생명과학과 오현식 박사과정이 제 1저자로 주도한 이번 연구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 온라인판에 2025년 12월 30일 게재됐다.
※논문명: AI-driven decoding of naturalistic behaviors enables tailored detection of depressive-like behavior in mice, DOI: https://doi.org/10.1038/s41467-025-67559-x
한편, 본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계도전 R&D프로젝트, 한국연구재단 기초연구사업 (중견연구), 보건복지부·한국보건산업진흥원,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