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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러플린 총장, 중앙일보 특별인터뷰​
조회수 : 20581 등록일 : 2004-09-06 작성자 : kaist_news


[2004.9.6(월)자 1면 우측 Top 보도] 로플린 KAIST 총장 중앙일보와 단독인터뷰
 

의사 수 넘쳐나 몸값 떨어지면 이공계 몰릴 것


로버트 로플린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은 중앙일보와 단독 인터뷰를 하고 KAIST를 비롯한 이공계 발전 방향, 한국의 노벨 과학상 수상 비전 등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는 1998년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지난 7월 KAIST 총장에 취임했다.
다음은 인터뷰 요지. (자세한 내용은 33면 이슈인터뷰)


▲KAIST 발전 방향
= 적은 비용으로 미국에서 공부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게 하는 게 나의 목표다. 미국 학교의 우위는 "언어"에 있다. 미국은 세계의 시장이다. 상품만 아니라 심지어 과학도 미국에 팔아야 한다. 그래서 언어가 중요하다. 한국 학교의 우위는 가격이다. 더 많은 외국어 교육을 통해 비싼 미국 유학의 효과를 얻게 하겠다.


▲이공계 기피 해법 =
시장 원리에 맡겨야 한다. 인위적으로 학생들을 이공계로 유인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우수한 학생이 많이 선택하는 의사의 수가 넘치면 몸값이 떨어지고, 그러면 인기가 시들해져 이공계로 돌아올 것이다. 이공계가 할 일은 사람을 키우는 것이다. 투자의 가치는 오로지 사람이다. 젊은이가 용기를 갖고 새 아이디어에 도전하는 것을 북돋워 줘야 한다. 실패하지 않았다는 것은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노벨상 수상 비전 =
시간이 문제지 앞으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에서 많이 탈 것이다. 과학 기술의 수요처인 제조업이 유럽.미국 등에서 아시아로 옮겨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벨상이 목표가 될 수는 없다. 노벨상은 결과로 올 수도, 안 올 수도 있다. 위대한 과학자 몇몇은 학창시절에 공부를 못했다. 중요한 것은 모험에의 도전이다.


▲과학 기술의 역할 =
과학은 인류를 위해 있는 것이지, 그 반대는 절대 아니다. 기술은 도구다. 모든 도구는 신중하고 책임있게 다뤄야 한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은 선택된 몇명의 임무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의무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아래 : 중앙일보 2004.9.6자 33면 전면보도>

[이슈 인터뷰] 로버트 로플린 KAIST 총장

로버트 로플린 한국과학기술원(KAIST)총장은 가족과 떨어져 교내 총장 관사에서 홀로 생활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관사에 피아노를 들여놓았다. 여러 곡을 작곡할 정도의 음악 실력이 있는 그는 휴일이나 밤에 가끔 피아노를 치기도 한다.
예술과 과학에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는 그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과학 교육의 현실과 발전 방향, 과학 기술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 등을 자세히 밝혔다.
인터뷰는 지난 2일 오후 대덕연구단지 내의 KAIST 총장실에서 약 1시간30분 동안 했으며, 부족한 부분은 e-메일로 추가했다. 편집자


"적은 학비로 미국 유학 효과 내겠다"


 
- 왜 한국을 택했나.
"하필 한국이냐고? 다른 나라에서 오라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웃음) 사실 많은 고민을 했다. 다른 사람들처럼 나 역시 애국자이고, 미국을 위해 뭔가 하고 싶다. 그러나 미국은 워낙 큰 나라여서 변화하기가 매우 힘들다. 한국은 작지도, 크지도 않은 나라다. 경제도 탄탄하다. 변화를 유도하기에 좋은 나라다. 장점이 또 있다. 국회에서 의원들이 싸우는 것에 대해 여기 사람들은 굉장히 부끄러워하는데, 외국인의 입장에서 그걸 봤을 때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 "이것이 민주주의다"였다. 민주주의는 혁신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중국은 사람도 많고 문화도 깊지만 정치적으로 불안해 사람들이 각자 자기 길을 가기 어렵다. 일본은 정부가 정해주는 것을 좋아한다. 한국은 중국.일본보다도 여건이 좋다."


- 로플린 총장을 "과학계의 히딩크"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만큼 기대가 크다.

"히딩크 감독만큼 똑똑한 분과 비교하는 건 정말 불공평하다. 사실 한국의 과학계에 문제는 없다. 더 필요한 것은 아주 작은 부분, 바로 대학 경영에 관한 부분이다. KAIST는 보조금을 많이 받는데 그러다 보면 아무래도 책임을 덜 느끼게 된다. 교수진과 학생이 시장의 압박을 느끼도록 경영 방식을 바꾸려고 한다."


- 세계 100대 대학이 한국에는 한 곳 밖에 없는데.

"마케팅의 문제다. 미국의 스탠퍼드 대학은 프린스턴대.하버드대와 같은 다른 사립학교들과 경쟁한다. 경쟁의 대부분은 마케팅과 이미지다. 나는 좀더 많은 모험을 부추기고 싶다. 진정으로 경쟁을 하고 싶으면 더 많은 모험을 해야 한다. KAIST를 미국이 배우고 싶어하는, 내가 추구하는 과학 교육의 모델로 키우고 싶다. 워싱턴에서 (과학 정책과 교육을 바꾸라고) 연설하는 것보다 한국에서 실천으로 보여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이다."


- 마케팅의 의미를 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
"KAIST와 미국의 MIT를 비교해 보자. MIT는 사립대학이기 때문에 학생들이 엄청나게 많은 돈을 낸다. 비싼 등록금은 교육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MIT는 대신 교육 이외의 것들도 굉장히 공격적으로 판다. 예컨대 다른 중요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제공한다. 경영대학원의 경우 일부 학생은 교수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이 학교에 가는 진정한 이유는 서로를 만나기 위한 것이다. 그러니까 학교는 교육만 파는 게 아니다. 대학도 여느 제품처럼, 나가서 소비자를 찾아야 한다. 마케팅이란 소비자를 찾아가는 것이다."


- 우수한 인재들이 미국으로 유학을 많이 간다.

"이 이야기를 꺼내줘 참 다행이다. 미국 대학들은 엄청난 우위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언어 때문이다. 한국이 만드는 상품의 상당 부분을 미국에 판다. 심지어 과학도 미국에 팔아야 한다.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다. 시장이 미국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언어가 중요하고 미국 학교들이 우위를 갖는 것이다. 한국 대학의 경쟁 우위는 싼 학비에 있다. 영어 등 외국어로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더 많이 도입해 적은 비용으로 미국 유학 효과를 내는 게 나의 목표다."


- 청소년의 이공계 기피 현상이 심하다. 어떤 해법이 있는가.

"시장 원리에 맡겨야 한다. 이공계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 의대에 많이 가는데, 그러면 의사 수가 너무 많아질 것이고, 의사의 몸값이 내려갈 것이다. 의사 수를 제한하지 않는 것이 잘하는 일이다. 이공계 기피 현상 치유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을 것이다."


- 한국은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나오기를 갈망하고 있다.

"이 질문을 많이 받는다. 내가 죽기 전에 물리와 화학 분야의 노벨상이 다 아시아에서 나올 것이다. 제조업이 아시아 쪽으로 옮겼으니 전문 기술도 옮길 것이고, 그러면 상도 따라 올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필요하다. 투자한 뒤 20~30년 정도 지나야 성과가 나온다. 지금은 그 과정 중에 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노벨상을 타기 위해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이노베이션을 위해 해야 한다는 점이다. 대학은 젊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있는 새로운 것들을 끄집어 내야 한다. 그러려면 굉장히 자유로운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 물건을 사고 파는 복잡함 속에 부(富)가 생기는 경제처럼 아이디어의 복잡한 교환 속에서 불꽃과 같은 아이디어가 나오고, 그것은 곧 새로운 발견으로 이어진다. 젊은이들이 용기를 갖고 새롭게 시도하고, 그것을 이뤄내는 의지를 갖게 해야 한다. 상은 저절로 따라올 것이고, 아직 없는 것은 시간이 덜 됐기 때문이다."


- 대학졸업 후 한 연구소에서 쫓겨난 적이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사실이다. 하지만 좀 복잡한 이야기다. 대부분의 젊은이는 취직할 때 낮은 곳부터 시작한다. 명성을 천천히 쌓아올리면서 한단계 위로 전진하는 것이다. 경쟁이 있는 환경에서 실패는 당연한 것이다. 실패하지 않은 사람은 큰 사람이 되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만큼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노력을 하지 않아서다. 실패가 행복한 일은 아니지만 위험을 회피하는 것은 정말 최악이다. 예술도 마찬가지다. 천재 예술가 중에는 공부를 못한 사람도 많다. 하지만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내면 그런 것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다."


- 과학 기술의 발달이 꼭 인류에 좋은 것인가.

"질문이 참 마음에 든다. 한가지 좋은 예가 집에 있는 컴퓨터다. 쇼핑.인터넷 뱅킹.신문 보기 등 다양한 기능이 있지만 포르노의 범람, 게임 중독 등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내 아들도 컴퓨터에 중독돼 무지 고생한 적이 있다. 과학기술은 도구이지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마법의 처방책이 아니다. 모든 도구가 그렇듯이 신중하고 책임있게 다뤄야 한다. 또 산업이 없으면 과학 기술도 의미가 없다. 제조업체들이 과학 기술의 바이어다. 과학 기술은 우리를 위해 있는 것이지, 그 반대는 절대 아니다."


- 얼마 전 포항공대 강연 때 "과학은 숨겨진 비밀을
   파헤치는 먼 여행"이라 했는데 그 의미는.

"물리에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는 새로운 법칙이 있다. 그 법칙은 늘 거기에 있었지만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딘가에는 아직 밝혀내지 못한 많은 것이 과학자들의 손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것을 찾으려면 미지의 세계에 도전해야 한다."


- 한국 정부는 빌 게이츠와 같은 천재를 양성해야 한다고 한다.

"빌 게이츠는 독점자이지 천재가 아니다. 내 생각에 진정한 천재는 타고 나는 것 같다. 하지만 천재성보다 이 세상에서의 상식이나 청렴, 패기와 열망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은 선택된 몇명의 임무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임무다."


- 피아노와 미술에도 조예가 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예술과 과학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수학적 능력이 음악적 능력과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는 물리학 문제를 풀고 있을 때 음악을 할 수 없다. 같은 뇌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서는 예술이 과학 능력만큼 중요하다. 기계를 사용하더라도 예술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순전히 기술적이기만 한 교육은 시대에 뒤떨어진다고 생각한다."


- 한국 생활은 어떤가. 가족과 떨어져 사는 게 불편하지 않나.

"한국은 외국인이 살기에 편한 나라다. 차이점을 인정해준다. 가끔 학교 옆 갑천변을 달리기도 한다. 한국에서 일하는 것을 사실은 아내가 더 강력히 권했다. 그러나 정작 아내는 직장(초등학교 교사)을 그만 두면 다시 얻기 어려울 것 같아 미국에 남았다. 매일 전화를 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떨어져 있다 보니 내가 전에 얼마나 아내에게 의존적이었던가를 새삼 느끼게 된다."

정리=박방주 과학전문기자, 원동희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 로플린 총장은

로버트 로플린(54) KAIST 총장은 과학자로서는 최고의 영예인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기까지 끊임없이 노력하는 삶을 걸어왔다. 로플린 총장은 1950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작은 도시 비살리나에서 태어났다.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에서 수학을 전공했다.


74년까지 3년간의 군복무 후 79년 매사추세츠공대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의 통신업체인 벨연구소에 연구원으로 입사해 3년간 근무했다. 그러고는 로렌스 리버모어 연구소와 스탠퍼드대에서 물리학 연구에 전념했다. 82년 드디어 물리학계에서 미완성 이론으로 남아 있던 "분수양자 홀 효과"를 실험을 통해 이론적으로 입증하는 데 성공했다. 과학자로서는 늦은 32세 때였다. 이 업적은 16년 뒤인 98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로플린 총장이 한국과 본격적인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4월 포항공대 아태이론물리센터 소장과 포항공대 석학교수에 부임하면서다. 한국을 일곱 차례 방문할 정도로 "친한파"라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 KAIST의 총장 후보로 급부상했다.


로플린 총장은 과학자이지만 음악과 미술 등 예술적인 감각이 뛰어나다. 그의 인터넷 홈페이지(large.stanford.edu)에선 그가 작곡한 곡을 들을 수 있고, 직접 그린 스케치도 볼 수 있다. 초등학교 교사인 부인 애니타 여사와 두 아들이 있다.

 

◆ 한국과학기술원(KAIST) = 고급 과학기술 인재 양성과 중장기 국책 연구개발을 목표로 71년 서울 홍릉에 세워진 한국과학원(KAIS)에서 출발했다. 한국과학기술대학(KIT)과 89년 통합되기 전까지 대학원 중심으로 운영됐으며 통합 뒤 KAIST로 이름을 바꿨다. 지난해 말 현재 교직원 693명에 학생 수는 석.박사급을 합쳐 6974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