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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작은 날갯짓으로 완성된 10개월의 여정, KAIST 연못에 돌아온 특별한 가족​
조회수 : 1249 등록일 : 2025-06-10 작성자 : 홍보실


2025년 6월 9일 오전, KAIST 캠퍼스 연못가에는 이른 시간부터 조심스런 움직임이 이어졌다. 격리 보호소에서 한 달간 지내던 오리 가족과 새끼 거위 두 마리를 다시 연못에 방사하는 날이었다. 작은 이동장이 열리자, 어린 새끼들은 주변을 살피며 천천히 물가로 나섰고, 그 뒤를 따라 어미 오리가 발을 디뎠다. 

KAIST 시설팀 조경담당자가 오리가족과 거위 새끼를 방사를 하고 있다.

< KAIST 시설팀 조경담당자가 오리가족과 거위 새끼를 방사를 하고 있다. >

지난해 여름 구조된 이 오리는 한때 무리에 섞이지 못한 외톨이였지만, 이제는 새끼 오리와 새끼 거위를 함께 품은 가족의 중심이 되어 돌아왔다. 방사 장면을 지켜본 학생과 교직원들은 10개월 동안 이어진 이들의 여정을 떠올리며 조용한 환영을 보냈다.

이야기의 시작은 2024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KAIST 연못가에서 어미 없이 뒤뚱거리며 걷던 아기 오리 두 마리가 KAIST 학생의 제보로 발견됐다. 보송보송한 솜털과 납작한 주둥이, 사람을 겁내지 않는 태도로 보아 누군가가 유기한 것으로 추정됐다. ‘거위 아빠’로 잘 알려진 생명과학과 허원도 교수와 KAIST 시설팀은 즉시 구조에 나섰고, 두 마리는 약 한 달간의 보호를 거쳐 연못에 방사되었다.

오리 가족을 방사한 6월 9일, 초대 ‘거위아빠’ 이광형 KAIST 총장(왼쪽)과 2대 ‘거위아빠’ 허원도 교수(오른쪽)이 함께 이들의 독립을 지켜봤다.

< 오리 가족을 방사한 6월 9일, 초대 ‘거위아빠’ 이광형 KAIST 총장(왼쪽)과 2대 ‘거위아빠’ 허원도 교수(오른쪽)이 함께 이들의 독립을 지켜봤다. >

처음에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적응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기존의 거위 무리와 어울리지는 못했고, 독립적으로 생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마리는 자취를 감췄고, 남은 한 마리는 겨울 연못가에서 부상을 입은 채 발견됐다. 생태계에 대한 인위적 개입을 최소화해 온 KAIST의 원칙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 예외가 적용되었다. 허 교수와 시설팀의 보호 속에서 오리는 한 달 만에 건강을 되찾았다.

이듬해 봄, 회복한 오리는 산란을 시작했다. 허 교수는 특별한 개입 없이 먹이 조절을 통해 산란과 포란을 지원했다. 그리고 5월 5일 어린이날 아침, 오리가 품은 알들이 부화했다. 구조 당시에는 무리에 섞이지 못했던 외로운 오리가, 이제는 한 생명을 품은 어미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열흘 뒤인 5월 15일, KAIST 연못에서는 또 다른 생명이 태어났다. 거위 무리에서 새끼 거위 네 마리가 부화한 것이다. 이렇게 많은 생명들의 탄생 속에서 오리 연못은 그 어느 때보다 활기 넘치는 모습을 보였다.

연못가에서 구조된 아이거위와 무리에서 외면당한 이들을 품어준 오리가족. 연약했던 아기오리가 10개월 만에 다른 외톨이를 품어줄 만큼 성장했다.

< 연못가에서 구조된 아이거위와 무리에서 외면당한 이들을 품어준 오리가족. 연약했던 아기오리가 10개월 만에 다른 외톨이를 품어줄 만큼 성장했다. >

그런데 불과 며칠 후 어미는 보이지 않았고, 물에 뜨지 못하는 새끼 거위들이 연못가에서 떨고 있었다. 이 모습을 목격한 서울대 학생 변다현 씨의 제보로 다시 구조가 이뤄졌고, 목숨을 검진 새끼 거위 두 마리는 오리 가족과 함께 보호소에 머물게 되었다.

서로 다른 종의 동거는 처음엔 어색했지만, 서서히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오리 어미는 새끼 거위들을 밀어내지 않았고, 새끼 오리와 새끼 거위는 함께 먹이를 먹고 잠들며 새로운 가족으로 묶여갔다. 한 달간의 합사 이후, 이들은 함께 연못에 방사되었고, 기존 거위 무리는 새끼 거위와 오리 가족 모두를 받아들였다.

오리 가족의 한가로운 한때. 아기거위들은 자연스럽게 어미오리를 따라나섰다.

< 오리 가족의 한가로운 한때. 아기거위들은 자연스럽게 어미오리를 따라나섰다. >

이 작은 가족이 연못으로 돌아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열 달. 유기에서 구조, 부상과 회복, 산란과 부화, 그리고 낙오된 새끼들을 함께 돌본 한 달의 동거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사연을 지닌 생명들이 한 무리가 되어 연못으로 복귀하기까지의 여정은 단순한 성장 이상이었다. 오리 가족의 10개월은 작은 위기들과 선택의 순간들을 거치며 만들어진 기록이자, KAIST 캠퍼스의 작은 기적이다.

KAIST 연못의 터줏대감인 거위 무리는 방사된 오리와 아기거위를 자연스럽게 무리에 받아들였다.

< KAIST 연못의 터줏대감인 거위 무리는 방사된 오리와 아기거위를 자연스럽게 무리에 받아들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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