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왼쪽부터) KAIST 최남순 교수, Dongyan Chen 박사과정, 홍승범 교수, 육종민 교수 >
배터리 속 이온이 움직였다는 신호, 실제로는 울퉁불퉁한 표면 때문에 생긴 착시일 수 있다. 우리 대학 연구진이 이처럼 배터리 내부를 잘못 해석하게 만들 수 있는 ‘가짜 신호’의 원인을 밝히고 이를 줄이는 방법을 개발했다. 향후 배터리 속 이온의 이동을 더욱 정확하게 분석해 전고체·나트륨이온전지 등 차세대 배터리 소재 개발의 신뢰도를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 대학은 신소재공학과 홍승범 교수 연구팀이 신소재공학과 육종민 교수 연구팀, 생명화학공학과 최남순 교수 연구팀과 공동연구를 통해 배터리 나노 분석 과정에서 실제 이온 이동으로 오인될 수 있는 측정 오류의 발생 원인을 규명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줄이는 방법을 제시했다고 7일 밝혔다.
배터리는 충전과 방전을 반복하면서 리튬이나 나트륨 이온이 내부를 오간다. 이온이 얼마나 빠르고 원활하게 이동하는지는 배터리의 성능과 수명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더 좋은 배터리를 개발하려면 이온이 내부에서 어디로 이동하고 어디에서 막히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분석하는 기술 중 하나가 원자힘현미경(Atomic Force Microscope, AFM)을 기반으로 한 전기화학 변형 현미경(Electrochemical Strain Microscopy, ESM)이다. ESM은 매우 작은 탐침으로 배터리 소재 표면을 훑으면서 이온이 움직일 때 소재에 생기는 미세한 변화를 측정해 이온의 이동을 간접적으로 파악하는 기술이다.

< DART-ESM 측정에서 나타나는 trace-retrace 불일치 현상의 모식도 >
문제는 배터리 소재의 표면이 울퉁불퉁할 경우 실제 이온이 이동하지 않아도 비슷한 신호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 실제 이온 이동으로 판단하면 이온이 어디로 움직이는지 잘못 해석할 가능성이 있다.
연구팀은 이러한 ‘가짜 신호’가 왜 발생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이온이 이동하지 않는 단결정 실리콘 표면에 일부러 미세한 홈을 만들었다. 이온은 움직이지 않지만 표면만 울퉁불퉁한 실험 환경을 만든 것이다.
그 결과 표면의 높낮이가 변하면 현미경 탐침과 시료가 맞닿는 정도가 달라지고, 이것만으로도 실제 이온 이동과 비슷한 신호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정량적으로 확인했다.
같은 현상은 실제 배터리 소재에서도 나타났다. 연구팀이 흑연 음극과 나트륨 고체전해질(Na₂Zn₂TeO₆)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표면의 모양에 따라 ESM 신호가 달라졌다. 특정 소재만의 문제가 아니라 다양한 배터리 소재를 나노 수준에서 분석할 때 주의해야 하는 현상임을 확인한 것이다.
연구팀은 해결책으로 배터리 소재의 표면을 최대한 평평하게 만드는 방법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아르곤(Ar) 이온 빔을 이용해 시료 단면을 정밀하게 다듬는 냉각식 단면 연마기(Cooling Cross-Section Polisher, CCP)를 사용했다. 아르곤은 다른 물질과 화학반응을 거의 일으키지 않아 시료의 성질을 크게 변화시키지 않으면서 표면을 정밀하게 가공하는 데 활용된다.
그 결과 표면의 거칠기가 크게 줄면서 울퉁불퉁한 표면 때문에 발생하던 측정 오류도 효과적으로 감소했다. 울퉁불퉁한 길을 자동차가 달릴 때 차체가 위아래로 흔들리는 것처럼, 배터리 소재 표면에 높낮이가 있으면 이를 훑는 현미경 탐침이 시료와 맞닿는 정도도 달라진다. 이러한 변화가 실제 이온의 움직임과 비슷한 신호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연구팀은 배터리 소재를 이루는 작은 결정들이 서로 맞닿아 있는 경계인 ‘입계(grain boundary)’에서 나타나는 신호에 주목했다. 여러 개의 타일을 붙였을 때 타일과 타일 사이에 경계선이 생기는 것과 비슷하다.

< 나트륨 이온 배터리용 NZTO 고체전해질의 AFM 이미지 사포 연마 후와 CCP 처리 후 비교 >
표면을 평평하게 만들기 전에는 이 입계에서 ESM 신호가 강하게 나타났지만, 표면을 다듬은 뒤에는 신호 증가가 사라졌다. 이는 기존에 ‘이온이 잘 이동하는 통로’로 해석될 수 있었던 일부 신호가 실제 이온 이동 때문이 아니라 표면의 높낮이 때문에 나타났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번 연구는 배터리 나노 분석에서 이러한 측정 오류가 왜 발생하는지를 실험으로 밝히고, 배터리 소재 표면을 평평하게 다듬는 실용적인 방법으로 오류를 줄일 수 있음을 제시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이를 통해 앞으로 배터리 속 이온이 실제로 어디에서 잘 이동하고 어디에서 막히는지를 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는 충전 속도를 높이고 수명을 늘리기 위해 이온이 원활하게 이동할 수 있는 배터리 소재를 설계하는 데 중요한 기초 정보가 될 수 있다.
연구팀은 이번 분석 방법이 현재 널리 사용되는 리튬이온전지는 물론, 액체 대신 고체 전해질을 사용하는 전고체전지와 리튬 대신 나트륨 이온을 사용하는 나트륨이온전지 등 차세대 배터리 소재의 작동 원리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새로운 소재를 설계하는 데 활용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한 정확한 나노 분석 데이터가 축적되면 인공지능(AI)과 머신러닝을 이용해 새로운 배터리 소재를 설계하고 성능을 예측하는 연구에서도 보다 신뢰도 높은 학습 데이터로 활용될 수 있다.

< 연구 이미지 (AI 생성) >
홍승범 교수는 “이번 연구는 배터리 소재를 나노 수준에서 분석할 때 표면의 높낮이가 측정 결과에 미치는 영향을 명확하게 밝혀낸 것”이라며 “배터리 속 이온의 움직임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해 차세대 배터리 소재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고 설계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에는 신소재공학과 진동연(Dongyan Chen) 박사과정 연구원이 제1저자로 참여했으며, 재료과학 및 나노기술 분야 국제 학술지 ‘스몰 메서즈(Small Methods)’에 2026년 6월 11일 게재됐다.
※ 논문명: Quantitative Analysis of Topographic Crosstalk in DART-ESM Arising from Feedback-Loop-Delay-Induced Contact Stiffness Variations in Battery Materials, DOI: 10.1002/smtd.70763
한편,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AI 및 머신러닝과 자동화 시스템을 활용한 고성능 소듐 이온 배터리 풀셀 개발」 및 「다각도-멀티스케일 데이터 융합형 리튬이차전지 설계 인공지능 플랫폼 개발」 과제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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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19